오판과 가짜의 홍수, 바뀐 삶의 그림

코로나의 시작과 지금: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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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021
이진호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현재는 낯설지 않은 코로나19이지만 사태 초반에는 발생 근원과 명칭, 각국 정부의 자만심(?) 섞인 오판 등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박힌 개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지혜를 발휘했고 삶의 그림을 바꿔 대응했다.

흔들리는 세계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제방을 쌓으려던 우리나라. 하지만 이 결정은 백신 확보를 늦추는 오판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는 맨 처음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돼 폐렴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WHO권고에 따라 'COVID19'라는 새 이름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입에는 한동안 우한이 계속 오르내렸다. 일부 보수 언론은 이 같은 개명(?)이 사태를 일으킨 중국에 대한 눈치보기라는 프레임을 씌워 '우한 코로나'라고 불렀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중의식이 싹텄다.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사이 세계는 오판을 거듭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망설이다 중국발 확진자가 대거 늘어났다. 지난해 2월에는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 비말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가 감염 경로로 알려지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정부는 해외 수출을 허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결국 국민 스스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나라가 판매하는 '공적 마스크' 제도를 도입했다.

8월 2차 대유행을 지나 확진자가 조금 줄어드는 듯 하자 10월 정부는 판매를 중단했던 공연·영화·체육 분야 소비쿠폰 발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줄어든 소비를 진작하자는 의도였지만 이후 확진자는 급속히 늘어났다. 백신 확보도 마찬가지였다. 사태가 1년을 향해가던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가 30개국이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간신히 지난 2월부터 순차적 접종을 시작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의존해 빚어진 실기(失機)였다. 국무총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확진자가 적어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말로 오판을 사실상 시인했다. K-방역을 맹신한 나머지 다른 나라보다 백신 확보에 늦게 뛰어든 셈이다.

우리나라만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중대하고 전략적인 성과를 거뒀다"며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미국 또한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독감의 일종이라고 평가절하하거나 "곧 사라질 것"이라며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마스크 쓰기 의무화는 지난 1월 새롭게 취임한 조 바이든 정부에 와서야 현실화됐다. 마음을 놓은 사이 미국은 확진자 2900만명가량이 발생한 나라가 돼 버렸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오판은 책임지지 못할 수준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아니 오판의 주체는 뒤로 빠지고 국민들만 볼모로 잡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 자리에서 내려왔고,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며 시진핑의 자신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생채기만 남은 자리에는 공포가 씨앗을 뿌렸다.

가짜는 공포를 먹고 자랐다

정부의 오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은 주체가 있어 책임을 물을 수라도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가짜 뉴스들은 계속되는 오판 속에서 빠르게 번식했다.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짜 뉴스가 공포심을 먹고 가지를 쳤다. 사태 초반에는 코로나19가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음모론이 돌았다. 우리나라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을 때는 '중국에 다 줘버려서 부족하다'는 주장이 퍼졌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2차 대유행의 원인으로 꼽힌 사랑제일교회 신도들과 광복절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가 괘씸죄로 가짜 확진 판정을 내렸다'는 조작설을 내놨다. 백신 접종을 앞두고는 '백신을 맞으면 유전자가 변형된다'는 괴담이 나돌았다.

가짜 뉴스는 오판이 낳은 변이 바이러스와 같았다. 외국인 입국을 두고 보여준 부처 간 엇박자, 사태 초반 증상이 있는 이들만 받을 수 있었던 무료 검사 체계(현재는 모든 사람이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요양병원이나 교도소 감염을 막지 못하는 등 정부의 많은 실책이 맞물려 국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연이은 불신은 믿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가짜 뉴스의 숙주가 되기 충분했다.

가짜 뉴스는 잘못된 정보 자체만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진짜 뉴스를 가짜로 혼동케 할 수도 있다. 위로가 필요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커뮤니티를  찾고, 성향이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만 골라 듣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이 자연스러워진 게 우연은 아닐 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시대. 에코 체임버 현상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더 도드라졌다. 또 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만 전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도 위기 속에서는 악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는 사실 전문가의 입과 머리를 빌리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정부는 매일 국민 앞에 나서 하루 동안 파악한 정보들을 전한다. 그러나 포털 댓글은 무릇 자극적이다. '확진자 규모를 축소한다' '국내 백신회사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 같은 추측과 낭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추측과 낭설도 에코 체임버와 필터버블의 산물일지 모른다. 더 자극적인 소식을 갈구하며 듣고 싶은 뉴스를 찾는 이들에게 이 둘만큼 달콤한 미끼가 있을까.

한번 시작한 공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손가락질을 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 혼란을 틈타 호주머니를 채우려는 이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가짜 뉴스를 코로나 시대의 자화상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취약점을 노려 급속도로 퍼진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와 같았다. 어쩌면 사태를 키운 제1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가짜 뉴스였을지도 모른다. 가짜가 낳은 혼란에 얽매이는 사이, 사태를 해결할 골든 타임은 헛되이 흘러가고 말았다.

똑똑! 에코 체임버 현상은 똑똑에서 자세히 다룬 적 있어요.

사고의 전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잡은 사람들. 가짜 뉴스에 휘둘리던 이들은 진짜 정보를 찾기 위해 정면 돌파에 나섰다.

다행히 사람들은 가짜에 완전히 매몰될 정도로 무지하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도 각자의 방법으로 정면 돌파에 나섰다. 믿음을 갉아먹는 가짜 뉴스를 검증했다. 믿을만한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보거나 잘 쓰인 전문가의 보고서를 읽었다. 이를 통해 인위로 만들어진 '허위 정보'와 자료가 부족해 나온 '잘못된 정보'를 구별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사람이 재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을 때를 살펴보자. 언론은 적극적으로 팩트체크 기사를 내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 정부도 "반려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된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뿐만 아니다.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삶의 그림을 바꿔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 나갔다. 바탕색은 ‘언택트’(Untact)로 칠했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생활 속에서 '비대면'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소재로 자리 잡았다.

여행이 불편해지자 직접 여행지를 찾는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명소를 둘러보는 '랜선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이게 뭐냐던 사람들도 금세 랜선 여행에 빠져들었다. 2020년 유튜브 내 랜선 여행 등과 관련한 영상 수와 평균 '좋아요' 수는 2019년보다 각각 21%, 57% 늘었다.

대학이 원격수업으로 전환하자 남학생들은 빠른 군입대로 돌파구를 찾았다. 학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제약이 생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청춘을 보낼 바에야 의무를 빨리 해결하기로 했다. 입대 경쟁률이 높아지며 면접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졌다. 현재 육군과 공군 면접 전형은 비대면 화상면접으로 치러진다. 코로나19를 피해 선택한 대안이 또 다른 서비스를 자리 잡게 했다. 회사들도 재택근무나 화상회의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줌(Zoom)으로 대표되는 원격 솔루션은 빛을 발한다. 지금 "줌에서 보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택트가 자리 잡으니 시선은 '효율'로 옮겨왔다. 낭비됐던 출퇴근 시간,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비롯되던 스트레스 등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비효율의 그림자가 코로나 덕에 지워졌다. 비대면이라는 우산 속에서 에너지 소모를 줄인 사람들은 삶의 여백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효율에 대한 생각은 둘로 쪼개진다. 분명 비대면은 삶에 새 패러다임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효율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 당연했던 일을 하지 못하는 속상함은 마음을 갉아먹는다. 모두에게 효율의 열매가 돌아가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비대면이 불가능한 이들이 있었고, 무리한 거리두기로 생존이 위협받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은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일까. 정답으로 믿는 것들이 혹시 틀리진 않았을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만난 시험대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영웅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스스로도 영웅이 돼 이겨내고 있다.

💡다음은 거리두기 속 멀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거리 둔 사회적 동물, 영웅은 가까이에'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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