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느라 지나친 코로나19 보건 비하인드

팬데믹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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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팬데믹은 변화를 남긴다. 비록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감내한 뒤의 이야기지만, 유례 없는 규모와 밀도로 경험한 아픔의 시간은 반대로 문제 개선과 반등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류가 겪어 온 팬데믹은 상실 뒤에 어떤 변화를 남겼을까. 그리고 코로나19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깨운 큰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인류 역사에서 팬데믹이 바꾼 것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가리키는 '팬데믹'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다. 세균이 인간에게 전염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통해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가축을 기르면서부터다. 그러다 점차 생활반경을 넓혀 멀리 교역에 나서고, 밀집된 인구가 도시를 생성함에 따라 전염병 역시 팬데믹이라는 대유행 상태로 몸집을 키워 인류 앞에 출현했다. 그 치명성과 영향의 규모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은 곧 삶을 대거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간 역사와 문화, 양식 등에서 나타난 몇 가지 변곡점들은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저항 흔적으로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연 흑사병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있었던 흑사병의 영향을 그린 그림.(1348) ⓒWellcome Images via Wikimedia Commons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전염병은 단연 흑사병이다. 1347년에서 1351년까지 유럽에서 약 5년 동안에만 2000만명 이상 사망자를 낸 이 전염병의 어마어마한 충격은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를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흑사병을 겪기 전 중세에는 신(神) 중심 세계관을 토대로 교회와 성직자의 권위가 높았다. 그러나 흑사병 앞에 응답 없는 신과 무력한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주체성을 강하게 일깨우게 했다. 물론 시기상으로 신흥 부르주아 세력의 대두, 대학 교육의 시작 등 르네상스는 이미 시작(13세기 말~14세기 초)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각성은 기존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여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또한 이때 발생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은 임금 상승을 일으켜 근대 자본주의가 일어나는 요인 중 하나로 이어진다. 134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흑사병 유행 지역에서 배가 들어오면 40일 동안 정박하게 했는데, 이는 오늘날 방역 조치의 뿌리기도 하다. 검역(quarantine)이라는 말 역시 이탈리아어 '40일'(quaranta giorni)에서 유래했다.

전쟁을 멈춘 스페인 독감
1918년 미국 캔자스주 펀스턴 캠프 응급병원에서 스페인 독감을 앓고 있던 군인들의 모습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via Wikimedia Commons

흑사병이 역사상 최대 사망자를 낸 감염병이라면,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스페인 독감이다. 1차 세계대전 중 군인에게서 발병해 퍼지기 시작한 스페인 독감은 전체 사망자의 3분의 2가 젊은 층일 정도로 20~45세 사이 사망률이 높았다. 유명 예술가 에곤 쉴레나 구스타프 클림트의 사인으로도 유명하다. 불과 몇 달 만에 수천만명에 이른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비슷한 기간 1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숫자인 1500만명보다 많다. 팬데믹의 이러한 전방위 공격에 급기야 인류는 자기들끼리 싸움을 멈춰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화조약까지 맺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독감예방 접종이 생긴 것 역시 스페인 독감 때문이다.

도시 위생을 자리 잡게 한 콜레라
1853년 콜레라로 사망한 사례를 보여주는 런던 골든 스퀘어 주변 소호 거리 지도 ⓒWelcome Images via Wikimedia Commons

위생과 수도관리에 있어 현대 도시 구조의 틀을 만들게 한 것은 어느 혁신적인 정치가도 건축가도 아니요, 바로 콜레라였다. 1817년 콜레라가 처음 발생한 곳은 당시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아가던 인도 캘커타(현재 지명 콜카타)였다. 주요 도로와 항로들이 거쳐가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단숨에 세계로 뻗어나간다.

콜레라는 물을 통해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고 감염자를 설사, 구토, 발열, 탈수에 시달리게 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다. 숙주가 사망한 후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 균은 강이나 수도를 통해 다시 이 물을 마신 사람에게 전염을 확산한다. 1830년까지 십수년 동안 콜레라의 맹위가 뻗쳐나간 곳은 유럽은 물론 멕시코와 이슬람 지역, 심지어 우리나라에까지 이를 정도로 전염성이 강했다. 1821년 순조 때 "평양성 안에서 괴질로 하루 사이에 300명이 사망했다"라는 소문이 돌며 나타난 콜레라는 이후 조선 한양에서만 13만명의 사망자를 낸다.

이처럼 콜레라가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세계적으로 물에 대한 공공관리 체계는 물론 위생관념 역시 전무했기 때문이다. 도시 환경 관리 수준이 극도로 열악해 위생, 상하수도 체계랄 것이 없었다. 각종 오염물질이 거리에 흘러넘쳐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일쑤였고 이는 특별한 여과 없이 다시 생활용수나 심지어 식수가 되기도 했다. 콜레라를 겪은 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진보한 위생시설과 상하수도를 갖추게 됐고, 이는 현대 도시의 위생시설과 상하수도의 틀로 평가받는다.

코로나19가 일깨운 공공의료의 현주소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일깨운 현시대의 취약성은 무엇이었을까.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내 보인 부문 중 하나는 바로 공공의료였다. 코로나19 발발 1년이 넘고 백신 접종이 시작된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현 공공의료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개인이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한 허들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것은 물론, '공공의료 붕괴'를 언급할 만큼 상황이 참담한 곳도 많다. 근래 브라질 북부 지역 아마조나스주에서 급증세를 보였던 코로나19 환자 사망 사태가 바로 그런 예다. 급증세를 보인 게 고위험군인 환자였던 것도 아니다.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혼선이 가중된 측면도 있지만, 주된 요인은 병상 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는 것은 물론 환자를 머나먼 타 지역으로 이송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병상을 확보한 환자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의료진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공공의료의 취약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아마조나스주의 코로나19 환자는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수백명에 달했다.

마냥 먼나라 일처럼만 느껴지진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병상 부족과 환자 대기 문제가 심각할 수준으로 치닫다가 병상 수의 1% 이상을 확보하라는 정부 행정명령으로 가까스로 진화한 바 있다. K-방역이라는 찬란한 휘장 아래 몸과 마음을 '갈아넣은' 의료계의 극심한 피로도 문제다. 지난해 7월6일에는 "영웅, 천사라는 수식어까지 필요없습니다. 사람으로 대우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간호사들의 시위까지 있었다. 문제는 환자 수용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체계였다. 전체 병상의 10%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환자의 80%를 떠맡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한국 사회 공공의료의 열악한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전문가들은 이를 교훈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체질을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수는 221개이다. 이는 전체 의료기관의 5.5%, 병상으로는 9.6%밖에 차지하지 않는 숫자다. OECD 평균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기관과 공공병상 비율은 각각 53.7%, 71.9%다. 미국, 독일, 프랑스의 공공병상 비율 역시 각각 21.5%, 40.7%, 61.6%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사회보험 형태에서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경우도 27.2% 수준이다. 의료 공급의 주체가 민간이다 보니 의료기관이 수요를 따라 대도시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이로 인해 지방에서는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 대도시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일쑤다. 현재 우리나라가 대도시와 지방 사이에 의료격차가 큰 이유기도 하다.

문제의 쇄신을 위해서는 공공병원 설립 및 민간병원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대로 된 수준을 갖춘 공공병원을 늘리는 일뿐 아니라 민간병원이 필요에 따라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선제적 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일부 국민들은 의료계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사실 위기상황에서도 서로 공방이 오갈 만큼 한계에 다다른 의료계의 상황을 보여준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의료 대처는 정부의 강경 명령으로 급한 불을 꺼 온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위기를 넘기는 임시방편이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월23일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겸직을 허용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음을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사태에서 본인과 수련병원장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과거 홍역을 빚은 바 있는 전공의 동원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현재로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임시방편의 연장선이라는 인상은 남는다. 올바른 공공의료 확립의 길은 명령하고 동원하는 차원 너머에 있을 것이다. 민간의료기관 스스로가 의료의 본질과 공공성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과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포스트 팬데믹의 길에 가깝지 않을까.

💡 다음은 코로나19가 끼친 경제적 영향과 정부 대응 이야기를 담은 3장 '아파도 먹고는 살아야지: 코로나와 경제'가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공성식 외 9명, 돌베개, 2020

코로나19를 다루는 거대 담론 뒤에 간과하기 쉬웠던 문제들을 10명의 사회학자 및 활동가가 모여 끄집어 올렸다. 비추는 것은 비대면, 재택근무, 동선 공개, 마스크 등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지만, 포착한 것은 그 안에 숨은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고찰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행동이 된 마스크 쓰기에 관해 궁금하다면 책의 3번째 장 '마스크 불확실성 시대의 마스크 시민권'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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