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수 없지만 닿아있는

코로나 살아내기: 노동, 상실, 그리고 연대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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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2021
이재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말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언어는 따라잡으려 애써 속도를 올려보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말보다 빠르게 현실을 바꿔나가죠. 언택트, 비대면, 거리두기 같은 단어가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등극하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결되고 만나서 마음을 나눴습니다. 길이 없으면 가상 공간에 만들었고, 거리에서, 동네에서, 그리고 화상 채팅으로도 이어져 연대했어요. 다 끝날 때까진 손을 뻗어 만질 순 없더라도, 마음만은 계속 닿아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평범한 연대, 위대한 일상

지난해 출간된 팬데믹 SF 소설 <벌레 폭풍>에서는 '말벌모기'로 불리는 벌레들이 떼로 나타나 인간들을 물기 시작한다. 벌레에 물린 인간은 발열 증상을 일으키고 독감에 걸려 심하면 죽기도 한다. 빙하가 녹아 고대의 박테리아들이 살아 나오는 탓에 세상은 더욱 위험한 곳이 됐다. 인간은 거의 완전한 비대면 형태의 사회를 만들어내고, 타인과의 접촉을 이어가기 위해 '스크린 윈도우'를 발명한다. 줌 기능이 있는 이동형 스크린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VR 정도의 몰입감을 지니고 있다. 이 스크린 윈도우를 사용해서 멀리 다른 건물, 다른 방에 있는 가족과 함께 가상 산책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포포는 언제든지 벌레에 물릴 수 있는 위험을 뚫고 오랫동안 스크린으로만 만남을 이어왔던 연인 무이의 집으로 이동해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팬데믹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 더 나아가 이어진 사람과 삶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이종산 작가의 노트가 와 닿는 결말이다.

말벌 대신 코로나19가 날뛰는 현실 세계에서 포포처럼 타인과 이어지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상대와 거리를 두는 형식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을 넓게 보아 연대라고 한다면, 코로나 시대의 연대는 적어도 손을 맞잡고 나란히 서서 걷는 형태를 띨 수는 없게 됐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져,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 2020년 8월3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

악수 대신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어도 마스크에 가려진 미소는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1m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 '아낄수록 만져서는 안 된다. 사랑할수록 멀리 있어야 한다'는 역설은 그러나 시민들의 연대를 막지는 못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돼

온라인 퀴퍼 썸네일 이미지. 기획자는 '오실래요?'라고 묻지 않는다. '뭐 입고 갈래요?'라고 물으며 손을 잡아끈다. 출처: 닷페이스

매년 여름이면 성소수자들이 모여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벌인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라고 불리는 이 축제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와 얼라이(ally)들이 피켓을 들고 도시를 행진하는 행사다. 공연이 개최되는가 하면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부스를 설치해 굿즈를 팔거나 나눠주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행사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지난해 6월에는 닷페이스가 주도한 온라인 캠페인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코스튬과 머리 모양, 소품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재현하기 위한 '겟 레디 위드 미(Get Ready With Me)' 컨셉으로 UX(User Experience)를 기획한 것이다. 참가자는 이름을 적어 넣고, 머리스타일을 꾸미고, 옷을 고르고, 소품도 선택한 후에 이미지를 출력해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 행진에 참여하게 된다.

캠페인 시작 13일 만에 8만6225명이 참여했다. 재미있고 다채로운 디자인과 창의적인 UX 설계 덕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렇지만 자칫하면 지루해지거나 교조적으로 될 수 있는 캠페인이 수많은 사람의 반응을 끌어낸 것이다. 온라인 퀴퍼 프로젝트 리더 김헵시바는 캠페인 전략이나 UX 기획보다도 "'우리가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이 어떤 것인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마치 UX에서 U(User)를 빼고 C(Common)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헤쳐 갈린 이들을 어떻게 호명해 불러 모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도 읽힌다.

사실 행사를 기획하는 이에게 전략과 기획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조직과 기획자는 진정성을 담아 행사를 준비하더라도, 참여하는 이에게 얼마만큼 마음이 가 닿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전략보다 본질에,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구성원들의 지지와 합의도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행사의 '문법'을 재해석해야 하는 기획자에게 새로운 시도는 광활하고 차가운 사이버 공간에서 하염없이 간절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빈 병에 담아 흘려보내는 일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고민해 어떻게 진심을 담을지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눈오리에 숨겨진 의리

코로나19와 갑작스런 한파 및 폭설로 모두가 떨던 2020년 겨울, 오리 떼가 한국의 거리를 습격했다. 눈뭉치 제조기 매출은 2020년 12월24일부터 올해 1월6일까지 2주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20배로 늘었다.

눈사람은 보편적이다. 문화를 막론하고 눈이 내리는 곳이라면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저 머나먼 겨울왕국에서도 공주님이 눈사람을 만들자며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눈으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왜 오리였을까? 오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만들기가 쉽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눈 피조물'이 크고 작은 눈덩이 두 개를 붙인 눈사람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된다.

'사회적 자본'이란 말이 있다. 사회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시민들 사이의 연결고리라 말할 수 있는데, 자발적인 모임의 수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정량화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보면 신뢰에 가깝다. 돈이나 권력이 정치와 권력의 통화라면, 신뢰는 사회의 통화다. 학자들은 시민들 간의 사교 모임이나 각종 단체가 많은 사회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자발적인 협력이 많고 갈등을 예방하거나 해결하기 수월할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발적인 눈오리 만들기 열풍을 사회적 신뢰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눈사람과 눈오리를 뒤이은 사람이 부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보면 어떨까. 저녁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종일 귀여움을 뿜뿜대며 기다려준 오리가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심. 길가에서 누군가 만들었을 눈오리를 마주쳐 그 귀여움을 음미하노라면 하루 내내 웃을 힘을 받은 기분이다.

눈오리는 코로나19로 도래한 비대면 사회에서도 만들어 함께 즐기기 좋은 조각물이다. 잠시 마스크를 쓰고 나가서 만들어놓기만 하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함께 보며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와 한파가 지배한 지난 겨울, 여느 해보다도 눈오리가 뉴스를 장식한 것은 사람들의 '이어지고 싶은 마음'의 방증은 아니었을까.

만남의 기쁨과 나눔의 희열

"혹시... 당근이세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제한된 지난해, 많은 이들은 중고거래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고 친절한 마음을 나눴다. 친절한 이웃과 정중한 인사를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코로나로 인해 더욱 고립된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를 잠시나마 좁혀 만나고, 웃고, 마음을 나눌 방법은 집 어딘가에는 남아 있는 중고물품을 파는 것이었다.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살펴본다.

사실 당근은 '당신의 근처'라는 뜻이다. 거래 가능한 이용자 반경은 6km 이내로 제한된다. 창업자들은 차로 1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여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전국을 6500개의 구역으로 쪼개 나눴고, 사용자는 거주지 인증을 해야만 해당 지역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 수 있다.

중고거래는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지난해 당근마켓의 거래액은 1조원가량이었다.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018년 100만명, 2019년 300만명, 2020년 1300만명을 기록했다. 3년 사이 활성 이용자가 13배 늘어난 것이다. 2019년에 비해 지난해에 사용자 수 3배가 넘는 증가폭을 기록한 이유는 경기 침체와 수익 감소로 인해 소소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시민들의 중고 거래 활성화로 볼 수 있다. 또 집안의 잡동사니를 처리하는 '정리 문화'의 확산도 당근마켓의 약진에 일조한 요소다.

그러나 이런 증가 폭을 단순히 '용돈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당근마켓 플랫폼 내의 무료나눔은 2018년에 14만, 2019년에 41만여회이던 것이 2020년에는 215만회가 넘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이용자 수의 증가폭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단지 사용자가 늘었기 때문에 무료나눔도 덩달아 늘었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2020년의 대부분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이었다. 어떻게 비대면 세태를 거스르며 '역주행'한 무료 나눔의 큰 증가 폭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당근마켓은 판매보다 연결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 당근마켓에 올라와 있는 중고품들은 가격이 5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다. 옷가지, 신발,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장난감, 컵이나 액자와 같은 생활용품 등 직접 사람의 손때를 탄 물건들이 주로 눈에 띈다. 비싼 전자기기, 고가의 의류, 가죽제품은 드물다. 둘째, 당근마켓은 간편하게 디지털화돼 캐시나 코인으로 거래하고 배송을 붙이는 서비스가 아니다. 6km 내이지만 걷거나 운전해서 직접 사람을 만나 거래한다. 효율보다는 연결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깨끗한 돈과 봉투를 준비하고 정성스레 편지까지 써서 물건을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빠른 응답이나 존댓말 사용, 거래지 선택에 대한 상대방 배려, 간식이나 덤으로 안 쓰는 물건을 주는 '럭키백'까지 고려하면, 정말 이 모든 일을 '용돈벌이'로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시급으로 계산해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사용자들은 동네 사람과 친절하게 웃으며 연결된다. 코로나19로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웃의 정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만나고 나누는 경험을 통해 얻는 뿌듯함과 삶의 변화를 위해 그다지 현금 가치가 높지 않아도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타인에게 건네주는 게 아닐까. 말하자면 판매 그 자체보다는 교류 경험 및 감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이 닿아 감염병의 시대를 돌파할 힘을 얻는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한편 비대면 시대의 솔로들은 어떨까? 사랑은 하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4~6월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16.4% 줄었다. 방역지침으로 결혼식에 많은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국내에선 줌을 통한 소개팅 '줌개팅'이 늘었다. 업체가 미리 신청자들의 가치관, 성격, 취향 등의 정보를 파악해 적절한 상대와 짝지어주는 방식이다. 대화할 주제나 질문을 사전에 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체로 "어색하지만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카메라와 모니터 화면을 계속 응시해야 하는 점, 표정이나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소통하기 어려운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많은 이들이 이미 줌으로 회의를 하거나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등 연애 바깥의 인연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방식에는 익숙하지만, 화상으로 호감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순탄할지는 의문이다.

업체가 아닌 앱을 통해 만나는 방법은 더 가볍고 선택폭이 넓어서 인기다. 소개팅 앱 '틴더'는 지난해 4분기 590만명에서 올해 2분기 620만명으로 유료가입자 수가 증가했다. 익명으로 만나 호감을 쌓아가며 자신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얼마간 봉쇄령이 내려졌던 미국의 경우 화상 채팅앱을 통한 만남이 늘었다. 아직 어색한 사이에 불편할 수 있는 '누가 돈을 낼 것인가'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스킨십을 못 하므로 때문에 자연히 진도도 천천히 나갈 수밖에 없다. 감정 소모가 줄어들고 관계의 만족도가 오르게 된다. 봉쇄로 출퇴근 시간이 줄어 대화할 시간도 늘었다. 팬데믹으로 겪고 있는 걱정이나 고민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스치는 인연들과의 연대

소셜 네트워크가 확산되며 느슨한 연결(Weak ties)이라는 말은 경제 트렌드 분석 용어가 됐다. 가족, 친구, 학연, 지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연결방식에서 만족감보다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이가 늘어나면서 가볍고 일회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앱이나 가벼운 만남 등을 통한 '쿨한 만남'을 추구하는 경향과도 연관이 깊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키워드는 느슨한 관계에 대한 선호뿐만 아니라, 만나고 연결되는 방식까지 포괄하는 중요 키워드가 됐다.

비대면 사회, 뉴노멀, 포스트 코로나 등 언론과 학계가 거대한 담론과 추측을 쏟아내는 중에도 사람들은 길이 없으면 만들어 사이버 공간에서 축제를 벌였다.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귀여운 오리를 만들어 전시했다. 정성을 다해 물건을 준비하고 무료로 나눔 할 소소한 것들을 준비해 중고물품을 거래한 이들도 있다. 방 속에 갇혀서도 화면으로 만나고 인연을 쌓아 사랑을 싹틔웠다. 소설 속 주인공 포포처럼, 인간은 이어지고 싶어 하는 존재다. 감염병도, 마스크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음만은 막지 못했다.

똑똑! 📕추천해요

도서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5명, 문학과지성사, 2020

팬데믹 시대의 삶을 탐구하기 위해 국내의 SF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이에요. 특히 본문에서 소개한 이종산 작가의 <벌레 폭풍>엔 팬데믹 시대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많았어요. "때로는 바깥과 자신의 연결을 끊고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막막한 외로움에서 헤어날 수 있게. 내면에 집중하면 혼자라는 사실이 외롭기보다는 편하게 느껴진다." 에디터가 애정한 또 다른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최후의 라이오니>예요. 살짝 밑줄 그은 문장들을 공유해드릴까요? "돌아오는 길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태생적 결함이, 사실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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