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

코로나 살아내기: 노동, 상실, 그리고 연대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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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2021
이재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노동, 상실, 그리고 연대의 경험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생겨난 '필수노동자'라는 새로운 범주에 집중해요. 특히 업무가 대면 만남을 요구하는 탓에 팬데믹 내내 고생한 배송·돌봄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거예요. 일의 존엄을 회복하고 노동자들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노동자가 필요하시다고요

코로나19로 모두의 삶과 의료,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사회 전체가 거리두기와 비대면으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대면 현장에서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중요성과 취약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타인을 간호하고 치유해줘야 하고, 음식이나 생활물자를 집 앞으로 배송해줘야 하며, 아동, 청소년, 노인 등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신경 써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노동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소위 '일자리 충격'은 비정규직에 집중됐고 일자리 감소 폭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컸다. 지난해 총 4차례에 걸쳐 한 시민단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정규직 실직률은 1차 3.5%에서 4차 4.2%로 소폭 증가했지만 비정규직은 1차 8.5%에서 4차 36.8%로 크게 늘어났다.

경제 전체의 노동 공급도 줄고 임금도 감소했다. 특히 남성, 임시·일용직, 저학력·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잠재 임금 손실률은 7.4%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재정 지원 등의 효과로 실제 손실된 임금은 이보다 조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이 늘어나 부담을 받는 노동자와, 일이 없어 생계에 타격을 받은 노동자가 갈렸다. 전체 345만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중 많은 이들에게는 '해고의 물결'이,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료·배송·돌봄 노동자에게는 '일폭탄'이 던져진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일복이 터졌다며 마냥 웃을 일도 아니다. 감염의 공포, 고된 업무 강도, 낮은 업무 안정성, 그리고 낮은 사회적 평판은 이들의 삶을 '위태한'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 다해 스러지면 삶의 기반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코로나19의 여파로 선진국들은 노동의 가치라는 교훈을 얻었다. 사회가 재난상황에서도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선에서 아픈 자를 치료하고, 필수 물자를 전달하며, 취약한 이들을 보듬는 사람이 없다면, 사회가 마비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 영국에서는 '핵심노동자(Key worker)'라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처우개선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부터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의료·배송·돌봄을 포함했던 필수노동자 범주에 택시기사나 경찰관 등이 추가로 들어가 더 포괄적인 개념이 됐다.

전국의 지자체장들과 공직자, 대학 총장 등은 앞다퉈 '고맙습니다. 필수노동자'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인증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필수노동자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임금 근로자 형태로 고용된 기간산업의 노동자와는 다르게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용이나 산업재해 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며, 통계에 잘 잡히지 않아 이들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정책적인 대응이 힘들다. 둘째, 고용 안정성이 낮다. 임금이 낮고 근무 여건이 취약한 편이다. 셋째, 노동 강도가 높아 산업재해 위험이 있고, 주로 대면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필수노동자에게 생계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호·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해 11월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지원 대상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제한됐기 때문에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노동자는 혜택을 받기 힘들다. 그 외에도 성동구는 지역 필수노동자에게 마스크 및 손소독제를 지원했다. 서울시는 노동정책 5개년 계획(필수노동자 전담조직 신설 등)을 내놨고 광명시는 필수노동자에게 무료로 독감 백신을 놔주는 정책을 내놨고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중이다.

필수노동자 담론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현장에서 의료·배송·돌봄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감염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필수'라는 용어에 걸맞은 처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특히 배송이나 돌봄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숙련인 특징 탓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정성도 내포하고 있는 직종이다. '필수'노동자는 결국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만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노동자가 아닐까.

필수노동자 담론에서 당사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다. 사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는 감사 캠페인에 사용되는 피켓이나 관련 기사에서 노동자의 얼굴이나 이름이 나오진 않는다. 시위 관련 기사를 제외하면 시민들이 필수노동자의 고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시민의 일상에서 필수노동자는 얼굴이 보이고,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는 상대일까.

배송의 기쁨과 슬픔

감염병과 추운 날씨를 뚫고 집 앞에 도착하는 물건. 물건이나 음식을 배송받는 사람들은 기뻐한다. 손가락 놀림 몇 번으로 주문해 고대하던 물건이 도착하는 광경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뻐하는 소비자의 시야 바깥에는 마스크와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배송노동자의 얼굴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택배업계는 팬데믹의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 손꼽힌다. 지금만큼 온라인 쇼핑과 배송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컸을 수도 있다. 미국의 온라인 쇼핑업체 아마존(Amazon)은 코로나 특수 및 연말 쇼핑 시즌이 겹쳐 4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긴 1255억달러(한화 135조4288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간 대비 44% 오른 수치다. 코로나 기간 오히려 직원을 50만명 이상 늘리고 물류 설비 면적도 50% 증대하는 등 확장을 꾀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가 50만명 이상, 확진자가 3000만명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반해 온라인 쇼핑업계는 호재를 누린 것이다.

한국도 전체 노동시장은 침체지만 유통업에 인력이 몰렸다. 고용통계를 보면 500대 기업의 국민연금 가입자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순고용인원은 6000여명 감소한 반면 유통업의 경우 3000명 이상 늘었다. 개별 기업으로는 쿠팡이 1년 새 1만명 넘게 새로 채용했다. 비숙련 직종인 배송업에 코로나19로 인해 직업이나 수입을 잃은 이들이 몰린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배달의 경우 40·50대 남성과 여성이 라이더로 일을 얻어 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문화·예술 전시나 공연에 심각한 제동이 걸려 택배나 배달에 나선 배우들도 있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배송업, 다른 직종에서 생계를 위해 뛰어든 사람들 덕에 더 늘어난 고용인원. 배송업 노동자들은 안녕할까. 택배의 경우, 2020년에만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이 기본적으로 무급인 데다가 고강도 노동이라 과로나 심지어 사망과도 연관된 것. 이에 분노해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했고 택배업체가 추가인원을 고용해 분류작업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택배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자영업자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본급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도 되지 않으며, 개선된 주 60시간 근무 방침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배달노동자는 플랫폼 노동자다. 일거리가 있을 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긱 워커'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용노동부가 추산한 플랫폼 노동자는 179만명, 이중 배달 기사는 약 20만명이다.

배달노동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낮은 고용안정성과 4대 보험 미가입 등의 문제가 있다.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영업과 같은 본업이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입어 부업으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N잡러'라 불리는 이들은 하루에만 두세가지 다른 일을 하러 바삐 시간을 보내야 하는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다. 낮에는 음식 배달을 다니고 저녁에는 맥줏집을 운영하는 식이다.

한편 갑질이나 눈길 주행 등 배달로 인해 겪는 슬픔도 있다. '단지 내 이륜차 운행 금지'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신원 확인을 위해 추운 날씨와 코로나에도 옷이나 헬멧, 마스크를 벗도록 요구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똑똑!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 마련 현황을 뉴스에서 다룬 적 있어요!

돌봄은 당연하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변화에 모두가 손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손씻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 학생, 노인들을 다독이고 도와주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손소독제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족들에게 나눠 주거나 체온계를 주문한 이는? 학교에 못 가거나 일자리를 잃고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과 식구들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세끼 지옥'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이도 있다. 원격으로 전환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를 위해 줌(Zoom) 조작법을 직접 배워 가르치고 불안감과 칭얼댐을 다 받아줬던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19는 돌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드러내 보였다. 돌봄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 인간의 삶 어디에나 녹아 있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막상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배송업과는 달리 돌봄 노동에는 계약서나 보수가 없는 경우도 많고,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라 일하는 사람 본인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화돼 사적 영역에 있는 것으로, '진짜 일'이 아닌 '집안일' 정도로 여겨왔던 사회적 관행 및 인식과 연관이 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가사 및 돌봄 시간은 전체 생활시간 중 17%가 넘는 약 29시간이었다. 한국 남성의 4%(약 6시간30분)에 비교하면 4배가 넘는다.*

돌봄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다.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돌볼 수는 없다. 돌봄은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배려하는 감정 노동이며, 수치심을 느끼거나 걱정, 우울,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더 커지지 않도록 대하는 정서적 기술이 요구되는 일이다. '좋은 돌봄'을 받은 사람은 수많은 심리적·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 낸시 프레이저를 인용해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제안하는 이도 있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인 돌봄 노동의 장을 보다 공평하게 개선해 모두가 생계 부양과 돌봄을 위한 노동을 평등하게 수행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특히 비혼과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곱씹어봐야 할 주장일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며 그 대안으로 '일의 존엄성'을 언급했다. 일의 존엄성은 단순히 노동자들에게 더 형평성 있는 보수를 제공하는 경제적인 정책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존엄성의 회복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청소하는 일, 누군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물건을 가져다주는 일, 아이, 청소년, 노인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돌보는 일이 반도체나 IT, 디지털 산업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공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들을 보고, 눈길을 마주치고,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자동화로 대체되는 위협에 놓인 이 시대에 일의 존엄성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 다음은 코로나로 우리 사회가 잃은 것들을 다룬 콘텐츠 '코로나로 놓친 기회, 마른 의욕, 잃은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 "코로나와 젠더: 정의로운 돌봄을 향하여", 조한진희, <포스트 코로나 사회: 판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김수련 외. 글항아리, 2020.

** "코로나와 젠더: 정의로운 돌봄을 향하여", 조한진희.

참고한 자료

도서

"코로나와 젠더: 정의로운 돌봄을 향하여", 조한진희, <포스트 코로나 사회: 판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김수련 외. 글항아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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