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둔 사회적 동물, 영웅은 가까이에

코로나의 시작과 지금: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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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021
이진호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가까운 거리에서 비말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 세계는 거리두기에 집중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격리라는 조치가 내려지는 세상이 됐고 거리를 두지 않는 이에겐 철퇴를 내렸다.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 거리두기 속에서 인간은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금세 멀어진 사람들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발발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해 3월22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끼리 거리를 두는 운동' 정도로만 통용되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고강도'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며 정부의 공식적인 방역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외출 자제 권고를 비롯해 종교·체육·유흥시설 등의 영업 중단을 강력 권고했고, 거리유지나 마스크 착용 등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기로 했다.

본래 2주로 예정됐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세계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국내에서도 집단감염 사례가 나오자 2주 더 연장됐다. 이에 바이러스 확산세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국민들의 피로는 이와 반비례해 커졌다.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는 몇 차례의 단계 조정을 거친 뒤 현재 오후 10시 이후 식당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의 모임은 금지된 상황. 10시 전이라도 함께 모일 수 있는 인원은 한 손가락 숫자도 넘지 못하는 불과 4명이다.

4월1일부터는 모든 입국자에게 자가격리 조치가 시행됐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2주간 자가격리 조치다. 공항에 내린 사람들은 다른 이와 만나지 못하고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해외여행은 리프레쉬가 아닌 14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 됐다. 여행사는 매출 감소라는 암초를 만나 대거 쓰러져 나갔고 무역도 위축됐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보다 더 강력한 봉쇄 조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는 3월24일 나라 전역에 봉쇄령을 내렸다. 식료품점이나 은행, 주유소 같은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렸다. 모든 항공편과 철도도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의 접촉을 줄여 감염률을 낮추겠다는 의도였지만 갑작스러운 조치는 풍선효과를 낳고 말았다.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액수는 2100달러 정도로 세계 100위권 밖이다. 빈국에 속하는 인도는 대다수 국민이 노점이나 가사 도우미, 운전기사 같은 일용직으로 일한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살기 위해 고향이나 돈벌이가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바이러스의 위협은 이와 함께 국토 전역으로 퍼졌다. 지금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100만여명. 봉쇄령으로 틀어막은 풍선이 민족 대이주라는 바늘에 터져버렸다.

강대국들은 자국민 지키기에 초점을 맞췄다. 변이 바이러스도 이 같은 흐름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는 지난 달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 외의 다른 나라들에 국경을 닫았다. 미국은 새로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행 비행기 탑승 전 음성 증명서를 내도록 하고 미국에 온 뒤에도 격리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세계는 바깥과 안쪽 모두에 거리두기의 장벽을 쳤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이어지고 싶은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방역이라는 대의 아래에서 모두 거리두기에는 동참하면서도 만남을 쉽게 끊어버리긴 힘들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10명 중 8명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쳤다고 한다. 정부 설문조사에서 국민 81.2%가 '거리두기로 인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만나지 못하는 피로감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멀어진 거리, 서로 다른 입장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감은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함으로 이어졌다. 피로감과 우울함에 지쳐 거리두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 '나만은 예외' '어쩔 수 없는 만남이었다' 등 각자의 논리가 충돌했고 이는 반목을 낳았다. 결혼이나 장례, 스포츠 관람 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대면 활동이 쪼그라들자 공허함이 커졌다. 지역마다 다른 거리두기 단계, 타인에 의한 확진으로 받게 되는 불이익, 거리두기를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해 생긴 집단감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나온 우울함. 이 모든 게 뒤섞여 반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리두기에도 형평성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인생을 좌우한다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의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정부는 지난해 확진자의 수능 응시를 허용했다. 하지만 이 결정을 내린 정부에서 일하려는 이들의 사정은 달랐다. 지난해 치러진 모든 공무원시험은 확진자의 응시가 불가능했다. 변호사시험도 확진자가 응시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시험 수험생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주며 비로소 확진자들에게도 변호사시험의 문이 열렸다. 공무원시험도 확진자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거리를 두고 싶어도 못 두는 사람들은 어떤가. 동부구치소 사태는 거리두기의 역설을 보여줬다. 이제까지 재소자와 간수 등 총 1276명의 확진자(2월7일 기준)가 나와 대표적인 집단감염 사태로 기록됐다. 구치소의 특성상 따닥따닥 붙어있는 환경. 거리두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바이러스는 갇혀있는 이들을 휘감았다. 뒤늦게 격리조치가 이뤄졌지만 한 방에 확진자를 채우고, 다른 방에는 비확진자를 모이게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이 방식은 사회에서 하는 격리조치와는 확실히 달랐다. 밖에서는 거리두기가 답답해서 난리였지만 갇힌 이들에게 거리두기는 생존과 직결된 필수 과제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블루의 직격탄을 맞은 이는 '사장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인식조사를 돌린 결과 코로나 사태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직군은 자영업(79.4%)이었다. 그다음이 무직·퇴직·기타(74.6%), 주부(74.4%)순이라고 한다. 운영시간 제한과 거리두기로 매출은 토막났고, 손님보다 재난안내문자가 더 많이 온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거리두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같이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상반된다. 형평성과 합리적 차등, 방역과 권리 간의 충돌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한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버랩 되는 건 우연일까. 코로나 종식이라는 다수의 행복에는 한 명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내가 희생자가 돼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웅에서 희망 찾는 사람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사태 초반 브리핑에 나선 모습으로, 이후 염색을 하지 못해 백발이 드러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보여준 차분한 태도는 우울함을 겪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출처:보건복지부)

지친 사람들은 그럼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누군가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꺼내줄까. 자연스레 사람들은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찾아야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노란 점퍼의 이 여성은 일부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의사 출신 공무원이었다. 코로나 사태 초반부터 정부 브리핑에 나선 그는 꼬리를 무는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답하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명하게 밝혔다. 차분한 태도와 예방의학 박사 경력에서 나오는 전문성은 코로나 블루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미국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우리나라 질병 예방과 관리를 총괄하는 수장이 된 것도 그가 보인 헌신에 비하면 약소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사람들은 그에게 '코로나 영웅'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가 전하는 코로나 상황 이상으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공무원일지도 모른다. 영웅은 난세에서 탄생한다는 말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바쁜 일정으로 염색할 시간이 없어 백발을 내보인 여성의 목소리에 전 국민이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나만 고군분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코로나 사태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과 지분은 압도적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대만에도 영웅이 탄생했다. 대만은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다. 현재 확진자 960명으로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가 40명에 불과하다. 같은 기준으로 1700여명인 우리나라, 8만8000여명인 미국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여성 수장으로서 'T-방역'을 이끌었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 발생이 보고되자 바로 그날 우한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멈췄고, 지난해 2월6일에는 모든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그 사이 1월에는 마스크 수출을 차단해 내국인들이 사용할 물량을 확보했다.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하면 최대 100만 대만 달러(한화 약 4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으로 방역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의 그늘을 지우자 경제도 성장했다. 대만은 지난해 2.9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태를 낙관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30년 만에 제쳤다. 또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n) 총리는 어떤가. 뉴질랜드는 확진자가 나온 지역에 록다운을 걸고, 총선도 연기하는 등 대부분의 행정을 코로나19 대응에 맞췄다. 아던 총리가 이끈 강력한 봉쇄조치로 뉴질랜드는 현재 누적 확진자 2300여명, 누적 사망자 26명으로 방역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영웅은 가까운 곳에도 있다. 저금통을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던 초등학생, 쪽방촌 무료급식소 운영이 멈추자 청소하며 모은 동전을 기부한 환경미화원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두꺼운 방역복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의료인들. 수많은 영웅이 한마음으로 사태 종식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웅신화는 코로나19가 종식됐을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마스크와 백신 등 보건이 사태 종식의 열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런데 정말 보건은 제대로 된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는 걸까. 놓친 부분은 없을까.

💡다음은 코로나 팬데믹 속 보건 비하인드를 다룬 2장 '살아남느라 지나친 코로나19 비하인드'로 이어집니다.

똑똑! 📽️추천해요

영화 <컨테이젼> 스티븐 소더버그,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11</컨테이젼>

10년 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은 마치 현재를 예견한 것 같다. 원인 불명 바이러스의 전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감염자와 이를 막기 위한 의료진의 사투가 지금 상황을 쏙 빼닮았다. 마스크를 끼고 악수를 피하고 될수록 집에 머물라는 영화 속 조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컨테이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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