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쓰임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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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능력에 따른 보상과 위계에 대한 긍정은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이념입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작동하는 체계이기도 합니다. 능력주의가 어떤 식으로 오늘날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지 살펴봅니다.

현상

능력이라는 자격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거세졌지만 일상에선 여전히 능력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지적되는 문제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온 이상 불가피한 생존 양식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 속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와 공정성 논쟁에 불을 지핀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를 정리한 바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능력'은 곧 개인의 자격이자 실존의 근거라는 겁니다.

능력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른 재화의 차등 배분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가 누리는 재화는 그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정당성을 보장받습니다. 여기에는 그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 역시 계산에 들어가죠. 성공은 능력과 노력으로 쟁취한 불가침의 보상이 됩니다. 성공하지 못한 이에게도 같은 필터가 적용됩니다.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으니 처한 상황이나 결과는 마땅합니다.

성공에 대한 자극이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이가 그렇지 못한 이를 업신여기는 상황을 낳을 수 있으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가 '누구 탓을 하겠어, 내가 못나서 그런 건데'라는 식으로 자조와 절망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계급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죠.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고 로널드 레이건(좌).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했지만 사회적 약자층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있다. 우측은 1980년 미 대선 당시 레이건 측 캠페인 슬로건.

개인의 능력은 국가 정책적으로 복지의 대상을 구분하는 명제로도 쓰였습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본격 수용된 신자유주의는 이런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경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사상입니다.

"우리는 그 자신의 실수가 아닌 일로 힘겨워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

당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요지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입니다. 레이건을 비롯해 신자유주의가 채택한 복지의 대상은 '그 자신의 실수가 아닌' 사람입니다. 자기 책임이라 할 수 없는 불운에 대해선 도움을 줘야 하지만, 책임이 있다면 복지로 구제할 수 없다는 거죠. 기회와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은 이후에도 거의 유사하게 강조됩니다.

의미

체제 정당성과 자발적 수용의 헤게모니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매우 독특한 체제입니다. 능력주의가 지배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대중의 공정성 요구에도 소환됩니다. 능력에 따른 것이라면 상위층의 세습이나 지위도 긍정합니다. 기회의 평등을 약속한다면 현실의 불평등도 옹호합니다. 사회 주요 계층과 대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입니다.

과거 귀족정이나 신분제 사회에서 사회적 재화, 기회, 통치이념 등은 모두 신분이나 혈연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들이 국가 살림을 이끈다는 사회적 책임 아래 수행됐지만 불공평은 드러나 있었습니다. 지배층과 대중의 이해관계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주의 아래 주요 계층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대중은 양극화를 받아들입니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용해 주목받은 '헤게모니' 개념입니다.

헤게모니(Hegemony): 사회 주요 집단의 적극적인 합의와 동의를 통해 얻어진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지도력. 또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에 의한 주도권.

신자유주의 이전 시점이긴 하지만, 그람시(1891~1937)는 자본주의 국가의 운영 방정식에 이제까지와 다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까지 지배와 피지배의 공식은 지배자의 일방적 억압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피지배계층의 반발은 한정적인 수준에 그쳤죠.

그람시는 더 이상 지배 집단이 강압적인 수단으로 체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가끔 호혜적으로 '당근'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체제의 정당성을 피지배자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거죠. 헤게모니는 구성원의 동의에 의한 지배체제입니다. 문화적 틀인 아비투스(Habitus)와 교육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 요소죠.

핵심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관계

현대사회 속 능력주의의 쓰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자본주의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를 지냈던 고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은 세계를 단일한 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했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능력주의 신화가 역사적 자본주의와 함께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저서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하며 능력주의가 수행한 기능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능력주의는 노동력을 동원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목표로 하는 사회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선 인간의 노동이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돼야 하죠. 능력주의는 노동력의 적절한 배치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객관·보편한 기준을 제공했습니다.

두 번째로 사회적 계층 이동성을 열었습니다. 능력주의를 통해 신분제는 폐지됐습니다. 이전에도 '개천용' 신화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두 사회적 상승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능력주의는 이제 예외적 신화가 아닌 공식 덕목이 됐고, 이것이 가능한 인구의 비율도 늘어났다는 겁니다.

'기회'는 사실 보편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른 계층 상승은 기회라기보다 경쟁에 가까워졌죠. 제도화된 능력주의는 결국 다시 소수의 사람에게 계층 상승을 허용하고, 다수의 사람에게 지위의 세습을 허용합니다. 또한 세계 경제의 양극화 추세 때문에 개인 및 집단의 지위 이동이 일부 발생할지언정 근본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월러스틴은 지적합니다.

재밌는 것은 불평등 구조는 여전하며 그럼에도 '합리성'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주의를 통해 구성원이 납득할 만한 불평등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노동에 자리 잡은 능력주의적 기준은 노동을 거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줄세우기식 평가와 서열적 구조를 해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자본주의가 구축한 개인의 계층 이동성 역시 이러한 계급서열제적 노동배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만들어낸 틀입니다. 구조의 불평등성이나 경쟁에 있어 자본 축적 및 세습의 불합리성은 능력주의의 '합리성' 아래 보호받는 셈입니다.

비교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출간한 사회풍자 소설 <The Rise of The Meritocracy>(좌)와 국내 번역본 <능력주의>(우).

'능력주의'(Meritocracy)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처음 쓴 말입니다. 언뜻 논문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사회풍자 소설이죠.

세습주의를 혁파하고 생산 효율성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현된 이 능력주의 사회에는 공식이 있습니다. 바로 '지능(IQ) + 노력(Effort) = 능력(Merit)'이라는 겁니다. '노력'이 함께 언급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능이 능력의 기준이 됩니다. '능력주의'를 '지능주의'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이유입니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은 IQ 테스트를 통해 선발됩니다. 오늘날 시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데요. 지능에 따라 우수한 아이를 골라 차등 교육을 시행하고 사회 주요 계층으로 육성합니다. 신분은 학교와 직장에 따라 철저히 계층화되고 빈부격차는 심해집니다. 그 결과 IQ 125를 넘긴 상위 5%만이 엘리트 계급으로 인정받습니다. 노동자는 엘리트의 하인으로 전락하기에 이릅니다.

사회가 부패하고 제 기능을 잃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능력주의 사회는 소기의 목적처럼 높은 생산성과 안정을 가져옵니다. 모든 시민에게는 '균등급'이라는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일자리가 없으면 가내 하인 자리일지언정 고용을 보장합니다. 재테크의 개념이 없어 엘리트들이 자산 투기에 매몰되는 일도 없습니다.

다만 대다수 하층 계급의 의식은 쇠퇴합니다. 능력에 따른 인생의 차등적 지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위치가 부족한 능력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입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지위 하락에 반발하지 못합니다. 노동조합의 간부 역시 좋은 대학에서 졸업장을 딴 젊은 엘리트가 맡습니다. 기존 노동조합은 "노동을 거쳐, 어려운 길을 헤치고" 지도자가 됐으나, "그래머 스쿨만큼 어려운 과정을 헤치고 올라가는 길은 없기 때문"(137쪽)이라는 것이 소설 속 근거입니다.

능력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이들의 모습도 미약하나마 끝까지 그려집니다. 평등주의자나 노동자의 지위를 염려하는 '포퓰리스트',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배제된 '머리 좋은 여성'이 그들입니다. 흡사 공산당 선언을 떠올리게 하는 '첼시 선언'을 외치며 저항을 계속하지만, 소설은 태아의 지능을 평가하고 급기야 인간 개량에 손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만이 아니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라서도 평가한다면, 계급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 계급 없는 사회는 또한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마침내 그 온전한 의미를 찾게 되는 관용적인 사회가 되리라. 모든 인간은 어떤 수치적 잣대로 비춰 봐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 도서 <능력주의> 268쪽, '첼시 선언' 일부

💡 다음은 오늘날 능력주의의 공정성을 점검해보는 '능력주의는 공정한가?'가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도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2020.

<능력주의>, 마이클 영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9명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0.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나종일·백영경 옮김, 창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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