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출현

역사 속 '능력'의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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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공정성을 중심으로 한 능력주의 논쟁은 근래 달아오른 이슈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사회적 인정과 보상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은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능력'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추구해 온 가치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능력의 발현은 인간의 사명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능력주의'라는 이념의 정당성과 당위를 보증하는 한 축으로도 존재하죠. 사회적 이념으로써 능력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인류사 속에서 '능력'은 어떤 가치였는지 살펴봅니다.

현상

이데올로기의 변화

능력주의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비교군으로 쉽게 떠올리는 것은 과거 봉건 사회입니다. 신분제, 귀족정에 따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도 태생이 정해준 계급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신분, 배경 상관없이 누구나 능력 있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적 가치관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열려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능력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삼고 있는 자유 자본주의 사회를 긍정합니다. 능력주의의 역사적 의미는 세습적이고 폐쇄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분배했던 신분제라는 구습을 타파했다는 데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혁신의 이데올로기죠.

그러나 능력주의에 여전히 동일한 이미지가 씌어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능력주의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오늘날 '능력주의'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경쟁과 공정성, 나아가 엘리트리즘이죠.

과거 "능력주의"라는 말이 전달했을 뉘앙스는 굉장히 급진적이었을 겁니다. 혹여 입에 담았다간 "이보게, 큰일 날 소리 말게!"라며 주변의 뭇매를 맞았겠죠. 실제로 중국 후한 말 재상이자 왕이었던 조조는 출신을 막론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면 인재로 등용하는 구현령(求賢令, 210년)을 편 바 있습니다. 그 결과 유학자들의 집단 반발과 연이은 상소로 골머리를 앓았죠.

시대 및 체제, 사회 구조가 변하며 능력주의에 담긴 이념적 색채도 변하는 셈입니다. 과거 신분제 봉건 사회에선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가치 세습을 비판하는 진보적 이념이었다면, 오늘날 자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주의를 토대로 한 분배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기득권을 대변하거나 양극화를 조장하지 않는지 그 공정성을 검토하게 됐습니다.

배경

능력주의의 뿌리

고대 그리스, 정치의 근간은 합당한 몫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능력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능력주의의 이념적 기원으로 '재능에 따른 출세'(career open to talents)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1789~1799)이 거론되곤 하는데요. 이전에도 능력주의에 대한 추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Suum cuique)

그리스 극작가 호머가 기원전 700년경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각자가 각각 소유해야 할 것을' '각자 적격인 것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능력에 따른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표현이죠.

지난 화에서 언급하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론은 이와 같은 명제를 이론으로 발전시킨 움직임입니다. 각자에게 각자 어울리는 몫이 돌아가야 공정하며 정의롭다는 내용인데요.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능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절대적인 선과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 있는 개인인 '철인왕'(Philosopher king)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바 있죠.

미국, 능력주의 아래 작동하는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능력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정립했습니다. 그는 재능 있는 이라면 누구나 사회의 엘리트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죠. 귀족정이 사회를 좌지우지했던 구 유럽 대륙과 다른 미국을 꿈꾼 겁니다. 그러나 그가 인권을 보장한 '누구나'는 백인과 중산층 이상 남성이라는 결정적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적·철학적 기원으로 꼽힙니다. 이외에도 양초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든 벤저민 프랭클린, 시골 태생 불후의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아칸소라는 변두리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됐던 빌 클린턴 등이 미국의 능력주의 신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아이콘으로 불립니다.

내용

우리나라와 능력주의

국가고시를 통한 등용문, 과거제

우리나라에서 능력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까요? 먼저 조선 시대(1392~1897) 과거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시험을 통해 관리를 임용했습니다. 서양에 비교하면 대단히 빠른 시기에 능력주의를 활용한 선진적 시도를 보여준 셈입니다.

그러나 모든 신분이 응시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으며, 교육이나 심사도 양반층에 집중된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중신과 양반의 인척을 천거해 임용했던 기존 음서제도보다야 훨씬 공정한 제도죠. 그러나 지나치게 오랜 시간 그리고 과도하게 과거제에 의존했다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는 사대부들이 엘리트리즘에 젖어 부패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과거제의 평가 항목인 성리학에 지나치게 심취해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압축 성장의 동력이자 원리

능력주의는 해방 후 전근대 발전을 이끄는 성장 동력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압축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졌습니다. 유럽의 산업혁명과 일본의 근대화를 롤모델 삼아 국가 주도 아래 진행됐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은 매장된 자원이 풍부한 국가도 아니고 당시 제대로 산업 인프라를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믿을 것은 국가 주도 아래 선택과 집중의 경제 전략, 그리고 이념으로 국민을 한데 묶어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이었죠. 재벌 기업이 주류인 대기업 중심으로 육성하고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한 수출을 통한 성장을 꾀합니다.

극도로 효율을 추구하는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히 더 나은 능력이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개인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고, '하면 된다' 식의 능력주의와 물신주의가 각광받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가 점진적으로 발전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를 거의 동시대에 겪어 정·재계 여러 곳을 채울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해집니다. 그 결과 대학을 통한 엘리트 영입 움직임이 활발해 대학이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현상으로 이어지죠.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생존법

능력주의에는 분명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끄는 힘이 있는 듯 보입니다. 과거 그리스에선 정치철학의 발판이 됐으며, 미국에는 짧은 역사에도 눈부신 성장을 가져다준 핵심 이념으로 작용했습니다. 조선 시대 과거제 역시 이전 사회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시행한 혁신이었죠. 짧은 시간에 이룩한 한국의 근대화는 분명 명과 암이 존재하지만, 능력주의가 성장을 견인한 측면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후 '노오력'으로 상징되는 오늘날 능력주의 서사의 근원이 되는 것은 또 하나의 역사적 위기입니다. 바로 1997년 외환 위기, IMF 사태죠. '국가부도의 날'로 불릴 만큼 유례없는 경기침체 속에서 개인의 생존 활로는 다시금 능력주의 문법으로 향합니다. 적자생존의 냉혹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려면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는 자립과 자조의 도덕이 강화되죠. 믿을 것은 자기계발입니다. 그간 기업이나 세일즈맨을 대상으로 유통되던 자기계발서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퍼져나간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키워드

인간성과 능력주의

능력주의를 근대적 이념이나 사회적 생존 방식으로만 이해하기에는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능력에 대한 긍정은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해석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신분제나 귀족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지배층에 국한된 개념이었습니다. 법 또는 권리 주체인 시민은 지배계급에 한정됐습니다. 권리 보장은커녕 사유재산으로 거래되던 노예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죠. 중세의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은 신이라는 절대자 앞에 평등해졌습니다. 인간의 기준은 신을 믿는가, 신앙심으로 갈렸습니다.

근대에 들어 비로소 이성과 능력을 인간의 중심 가치로 파악하고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14~16세기에 걸친 르네상스 시대에 발현된 인간성의 추구, 인간주의(Humanism)입니다. 인간주의의 발흥은 교회의 권위 아래 억눌린 인간성을 해방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인류 발전을 가속했죠. 물론 식민지 개척이나 노예무역, 그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 등도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을 정력적으로 긍정하며 수행한 행위입니다. '미개한' 원주민이나 흑인, 노예 등은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니까요.

수도사와 승려의 일이 들판에서 노동하는 농부의 일이나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여인의 일보다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우월하지 않다. —마르틴 루터

인간이 적극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행위인 노동에 있어서도 비슷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특정 계급이 담당하는 고난으로 인식됐던 노동의 위상이 떠오르는 것은 중세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노동이야말로 일상 속에서 신을 따르는 도덕적 행위라는 '천직' 개념이 대두된 겁니다. 이는 오늘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의 기원이기도 하죠.

노동의 긍정성은 근대 자본주의를 만나 적극적으로 수행됩니다. 돈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취득하는 임금노동으로서 가치론적 서열에서도 우위를 점하죠. 여기에 가치관적으로 힘을 보탠 것이 이성과 능력에 따른 실존을 중시한 인간주의입니다.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노동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자 자기실현 수단으로 파악되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노동의 위상 상승은 자본주의를 위시한 당대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수행된 측면이 있습니다. 노동은 신성해졌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힘든 역사를 견뎠죠.

능력에 대한 긍정은 인간의 중심 가치이자 인간 사회의 변혁을 추동하는 힘입니다. 자본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이 사회의 발전 양상과 맞물려 능력주의가 발휘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 보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능력주의에 집착하거나 그 과정에서 객관과 공정성을 잃어버리면 사회적 부조리 또한 저질러왔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자유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 속 능력주의 활용을 들여다 본 '능력주의의 쓰임'이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도서

<노동이란 무엇인가>, 라르스 스벤젠 지음, 안기순 옮김, 우듬지, 2013.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9명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0.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지음, 윤은주 옮김, 교유서가, 2018.

뉴스

조선일보

[윤평중 칼럼] 열린 능력주의가 옳다

한국일보

'기회'의 공정 vs '결과'의 공정... 능력주의의 빛과 그늘

논문

"능력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해체", 김미영, 2009.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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