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쟁 종결'의 이면, 기술 민족주의

왜 미국은 LG-SK 합의에 쌍수 들었나
에디터의 노트

요즘에 배터리다, 반도체다 해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사정이 궁금하셨나요? 에디터는 국내 LG와 SK사이 배터리 분쟁은 '머선' 일이고 왜 미국이 중재를 하더니 '미국의 승리'라며 자축하는지 궁금했어요. 판도라의 박스를 열어보니, 국제정치라는 어렵고 딱딱한 주제가 숨어있더라고요. 배터리가 방전된건가, 왜 미국이 그렇게 전기차 배터리 확보에 열심인지, 중국은 왜 그리 과학 기술 투자에 난리인지 살펴봤어요. 똑똑과 함께 지식의 밧데리를 채워보실까요?

👀 한눈에 보기

  • 2년여간 이어져 온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갈등이 일단락됐다.
  • 미국 정계가 양사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백방으로 뛴 사정이 밝혀졌다.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 전기차가 급부상하는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부족이 예상되는 미국과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갈등이 예상된다.

🔥 왜 중요한가?

한국 재벌 기술 분쟁 종결🤝

집단적인 직원 이직으로 촉발된 LG와 SK간 '영업 비밀' 및 '특허권' 분쟁이 서로 주장하던 배상액의 중간점을 찾는 방식으로 종결됐다. SK가 LG에 2조원을 배상하고 상호간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등판? 😮

LG와 SK의 배터리 분쟁 합의를 놓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평했다. 왜 한국 '재벌간 싸움' 종결에 미국이 신났을까?

  • 철수 위기에 몰렸던 미국의 SK 공장이 계속 가동돼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게 됐고,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미국 내에 둘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언론은 "진짜 승자는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LG와 SK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리더🌍

이번 분쟁은 전기차 배터리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두 한국 기업간의 갈등이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각국의 탄소배출 감소정책인 그린뉴딜, 기업계 친환경 투자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로 전기차는 가파른 상승이 예상되는 주요 산업 분야다.

큰 그림
청사진
배터리 전쟁 중재에 나선 캡틴 아메리카
LG-SK 배터리 분쟁은 단순화시킨 자료보다 복잡하지만 많은 언론이 이번 합의에 미국의 역할이 컸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기술인력 이직으로 촉발된 LG-SK 배터리 '전쟁' 🔋

2017년~2019년, 100여명의 LG 직원이 배터리 산업 후발주자인 SK산업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SK가 2018년 말 폭스바겐의 수십억달러 규모 배터리 수주를 따냈다.

  • LG는 이직한 직원들이 폭스바겐 관련 제품과 기술을 다루는 부서에서 일했으며, 이들이 SK에 핵심 기술을 유출했고, 그 덕에 SK가 폭스바겐 수주를 땄다고 주장하며 2019년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LG의 승, 그러나: ITC는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최종 결정을 미루다 올해 2월 SK의 혐의를 인정하고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 조치를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조지아의 SK 배터리 시설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미국에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나 비공식적 로비로 배터리 공급망을 지키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양사는 계속 협상을 이어갔으나 LG는 배상금을 3조원 이상, SK 측은 1조원 수준을 제시하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 조지아주의 SK 전기차 배터리 공장 조감도와 공사현장. 출처: SK이노베이션

미국,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공급망 확보에 백방 뛰어다닌 미국 정계: LG와 SK의 전기차 배터리 분쟁 타결을 위해 미국 조지아주 정치인이 막판까지 급박하게 움직였다. SK의 조지아주 배터리 생산 시설은 26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배터리 확보는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과 기술력의 문제다.

  •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존 오소프(민주당)는 2일 워싱턴으로 날아가 3시간 가량 SK측 임원진과 면담해, 분쟁 합의를 촉구했다. 그의 설득으로 양사 협상이 재개됐다.

니드 포 배터리: 미국 정계가 양사 협상에 중재를 자청한 것은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제품으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조지아의 SK 공장이 중요하다. 게다가 대량 생산해 해외 수출이 가능한 반도체와는 달리 배터리는 전기차 조립회사와 구체적인 맞춤화가 필요해 현지 생산이 선호된다.

퉁치고 화해하시죠: 분쟁이 제기된 지 713일째, 양사는 총액 2조원을 SK가 LG에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에는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이 포함되고, 양사는 현재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앞으로 10년간 추가적인 소를 제기하지 않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은 이득: SK는 미국 내 사업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게 됐다. SK는 조지아주 1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2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임팩트
전기차 배터리의 국제정치학

LG-SK 배터리 분쟁에 미국이 끼어든 데는, 더 복잡한 전기차 시장의 국제적 사정이 있다.

코로나19의 경제 타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기차 시장은 43% 성장했다. 그 배경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각국의 탄소 감축 정책과 기술 발전이 있다.

코로나 뚫고 찌릿찌릿⚡: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5%에서 지난해 4.2%로 상승했다.

차이나가 차이 나: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올해 1·2월간 팔린 주요 전기차 판매량 5위 기종 중 3대가 중국산이었다. 올해 시장별 전기차 판매량은 유럽이 190만, 중국이 170만, 북미가 50만으로 막대한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엔진!💨: 휘발유나 디젤을 쓰지 않는 전기차의 동력은 배터리가 담당한다. '엔진'이라는 핵심 품을 대체하기 때문에 전기차 가격의 약 30%는 배터리차지한다. 최대 주행 거리나 수명 등 배터리의 핵심 성능은 차의 상품성과 직결된다.

아기 배터리 '삼형'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3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다. 한국의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중국의 CATL·BYD, 그리고 일본의 파나소닉이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그런데 배터리는 최종적으로 가공되는 형태에 따라 시장이 세분화된다. 전기차 업체마다 선호하는 형태가 달라 어떤 '형'이 대세가 될지 주요 관전 포인트다.

LG와 SK는 파우치형 위주로 생산해왔다.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도 GM, 포드 등 미국 전기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래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던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로 노선을 바꾸게 돼 LG와 SK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각형이 이제 큰형?: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선 각형 배터리가 대세다. 점유율 1위에 등극한 CATL의 배터리가 각형이다.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로 전환한 것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기술 민족주의'의 부상?🖥️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갈등 중재의 저변엔  양국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육성하고 통제해 서로 경쟁하는 국제정치라는 맥락이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 기술 영역에서 중국의 꿈('중국몽')은 '기술패권'이다. 중국은 공격적으로 산업 및 과학 기술 투자를 통해 핵심 산업을 육성해왔다. 2000년 400억달러(한화 약 45조원)이던 R&D 투자는 2017년 4500억달러(약 502조원)로 미국의 4800억달러(약 535조원)에 비등한 수치였다. 과학 기술 연구자 수는 같은 해 170만명으로 미국의 120만명을 앞질렀다.*

미국의 대응, 중국 강퇴: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5G 독자 기술을 보유한 중국의 화웨이 단말기가 데이터를 유출한다는 이유로 전면적 제재를 지시한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조치다. 이 외에도 중국 연구자 입국을 막는 '기술 보호', 미국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탈동조화', 그리고 중국 주요 기술 기업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를 막는 '자본 연계 차단' 등의 조치가 있었다.**

배터리의 위치: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은 핵심 기술 물품의 국내 공급망을 검토하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이 포함됐다. 핵심부품인 반도체나 코로나19 시대의 의약품과 함께 언급됐다는 점에서 배터리 확보 문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똑똑!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정리한 콘텐츠와 인도·태평양 전략 화두로 떠오른 쿼드(Quad, 사자안보대화)에 대한 뉴스를 추천해요.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문정인, 216~22.

**같은 책, 223~35.

스탯
2021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중국 배터리 업체🇨🇳: 새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럽다.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텐데 중국 내수 시장이라는 큰 바다에서 우린 경쟁력이 있다. 덤벼보시지.

LG·SK🇰🇷: 이번 사태를 2조원으로 '퉁친 건' 우리가 싸우는 동안 중국이 급부상해버려서 더 이상 길게 끌 수 없어서다. 하지만 미중 갈등 덕에 미국에 공장을 가진 우리가 유리하다! 배(터리)이득!

미국🇺🇸: 미국 내 배터리 생산망을 바삐 확보 중이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중국은 기술자립을 공표하고 인공지능, 반도체, 클라우드 등 '핵심기술' 영역에서 무섭게 쫓아올 것이다. 본격적인 기술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미국이 쌍수 든 진짜 이유🇺🇸

바이든 행정부의 1순위 목표는 '중산층 지지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산업을 부활시켜야 하고, 외국으로 이전한 생산망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이뤄야 한다. 2월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의 국내 공급망을 검토하는 명령을 내렸는데, 배터리는 국내 생산 공장이 적어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현재 2026년까지 '전기차 보급률 25%'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국내 생산품을 선호하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시설이 부족한 가운데 조지아의 SK이노베이션 공장 유치는 바이든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CATL의 부상 뒤엔 공산당이 있었다🇨🇳
[CATL은] 중국 공산당이 키운 회사다. 우리가 얕볼 단계는 이미 지났고, 기술력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다. —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CATL은 2011년 설립돼 10년 만에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긴 역사를 가진 파나소닉이나 대기업 계열사인 삼성, LG, SK, 그리고 워렌 버핏의 지원을 받는 BYD와는 태생이 다른 CATL을 키운 것은 공산당이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중국 생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국 배터리를 육성했고 CATL이 이득을 봤다는 것. CATL이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먼저 뛰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2015년부터 약 2년간 매출의 7~8%를 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한 점도 부상의 이유로 꼽힌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차해전술'? 중국 시장이 커지며 배터리 기업도 득 봤다🚗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는 지난해 대비 올해에 세 자릿수 점유율 성장을 기록했다. 업계 1위로 자리한 CATL은 17.3%에서 31.7%로 성장률이 272%에 달했고 BYD는 2.8%에서 7.0%로 401%가 넘는 성장을 이뤄냈다. 중국 배터리 업체가 급부상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 전기차 내수 시장의 양적 팽창에 기인한다. 자국 시장이 3배 이상 팽창하면서 내수 점유율이 50%에 달하는 CATL이 큰 이득을 본 것. 중국이 지난 3월 양회에서 앞으로 5년 동안 R&D 지출을 매년 7% 이상 늘리는 등 기술 자립과 연구 개발에 중점을 둔 가운데 중국 기술 기업의 강세가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