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왜곡

탈레반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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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근본주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이어서 탈레반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 행태의 근거를 찾아봅니다.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국가를 운영한다는 탈레반의 말은 신뢰할 수 있는 걸까요? 알라는 정말 무슬림에게 차별과 탄압을 가르친 걸까요?

현상

혼돈의 아프간, 사라진 여성 인권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깊은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8월 탈레반은 수도를 장악한 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고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범위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한 젊은 여성이 탈레반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탈레반 대원이 미혼 여성의 집에 찾아와 결혼을 강요하는가 하면 수많은 여성이 일터와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남성 동행 없인 외출도 어렵습니다. 이게 정말 이슬람의 가르침일까요?

내용

쿠란 속 여성 인권

남성의 우월성? 여성은 소유물?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알라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떤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 쿠란 4장 34절

이슬람 교리가 남성의 우월함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긍정한다는 근거로 소환되는 문제의 구절입니다. 이 부분 때문에 하디스나 샤리아의 적용 문제도 해석에 따라 갈리는 건데요. 그러나 쿠란은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밝힐 뿐입니다. 당시 남성이 생업에 나섰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보호를 덕목으로 규정한 것이죠.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거나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기 위한 표현이 아닙니다. '때려도 된다'는 내용 역시 품행이 정숙하지 않은 여자에 한해 가장 나중에 동원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지금 관점에선 그래도 문제지만요.

이 4장은 여성의 권리를 다루는 장입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여는 첫 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남녀가 동등한 존재라는 점이죠. 둘 모두 '알라께서 한 몸에서 창조'했음을 이야기합니다. 신앙을 통해 천국에서 누릴 보상 또한 같다는 점을 통해 알라 앞에 남녀가 평등함을 역설하죠.

일부다처제의 배경

이슬람은 4명까지 일부다처제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축첩 제도처럼 남성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위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성격이 큽니다. 이슬람이 생겨난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미망인과 고아를 구제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당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여성이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기엔 치안 수준과 노동 강도 면에서 쉽지 않은 환경이었죠. 지금도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생계를 책임지거나 가정 지출을 부담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성은 '어머니'라는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무함마드의 '일부다처제'는 생계가 어려운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보살필 수 있게 한 겁니다. 일종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였던 셈이죠. 그러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만이 여러 아내를 책임질 수 있었으며, 어느 한 명을 편애하지 않고 모든 부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함이 쿠란에 명시돼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말하죠. 이른바 '조건'이 있는 셈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과부나 고아와 같이 취약층을 돕기 위한 목적이어야 하며, 모든 부인을 똑같이 존중해야 하죠.

여성 해방은 이슬람 태동의 과업

이슬람은 창시 당시만 해도 남녀평등에 있어 매우 진보적이었습니다. 사도 무함마드의 뜻도 그러했죠. 무함마드가 살았던 6세기 말~7세기 아랍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는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인격권이 없었고, 무함마드는 이를 개선하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부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무함마드가 종교적 지도자가 된 데에는 그의 첫 번째 부인 카디자의 덕이 컸기 때문입니다.

무함마드보다 15살이 많은 과부였던 그녀는 부유한 상인이었기에 무함마드에게 경제적·사색적 자유를 제공할 수 있었죠. 쿠란은 서구 사회에선 수 세기나 뒤에야 이야기되는 이혼과 상속에 대한 권리를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쿠란은 58장에서 선지자와 진지하게 토론하며 의견을 개진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는 등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도 공평히 보장하고 있죠. 이슬람 현대사 속에서도 드물지만 공직에 출마해 자신의 뜻을 펼치는 여성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

탈레반의 행동 원리, 파슈툰왈리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재점거한 탈레반의 행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자행하는 인권 문제 역시 이 두 가지를 근거로 합니다. 첫 번째는 누차 얘기해온 바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이고, 두 번째가 바로 파슈툰왈리(Pashtunwali)입니다.

1994년 공식 조직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의 말로 '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아프간은 그들 법으로 인정하는 민족만 14개에 달할 정도로 다수의 부족국가인데요. 이 탈레반이 무얼 배운 '학생들'이냐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입니다. 그러니 샤리아의 해석 또한 매우 원리·원칙적이죠. 그들이 텔레비전과 음악, 영화를 금지하는 것은 당연히 쿠란에 규정돼 있지 않은 일일뿐더러 이슬람을 타락시킨 서구 문물이기 때문이죠.

이슬람에 앞서는 부족 관습법

탈레반이 여성의 복식을 제한하거나 남성의 동행 없인 외출을 허락하지 않고 등교나 출근도 제한하는 등의 행태는 사실상 그들의 부족 관습법인 파슈툰왈리와 연관 깊습니다. 탈레반이 파슈툰족의 말이라고 얘기했듯, 탈레반의 뿌리는 파슈툰족입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부족 관습은 이슬람이 있기 전부터 존재한 유구한 전통이고요. 이슬람이 있기 전 존재하던 360개 이상의 우상은 알라로 정리했지만, 부족적 관습은 어찌하지 못한 겁니다. 탈레반에게 이슬람보다 가까운 것이 파슈툰왈리입니다.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파슈툰왈리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여성을 보호한다'입니다. 언뜻 낭만적인 기사도처럼 들리지만 여성을 매우 수동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각입니다.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반드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죠. 그렇기 때문에 남성 없인 밖에 나갈 수도 없는 겁니다. 보호가 지나치다 못해 심한 구속이 된 건데요.

게다가 파슈툰왈리는 '명예'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곧 죽음과 다름없다고 여기죠. 그런데 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하는 일은 파슈툰족에서 곧 명예에 금이 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억압의 수위가 높고 처벌 역시 횡행하는 거죠. 또한 한 사람의 명예는 곧 부족 전체의 명예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족 차원에서 엄벌을 내리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발전은 매우 뒤처진 편에 속합니다. 내전에 시달리느라 미디어 보급도 안 돼 있고 구석구석 정부의 영향력도 발휘하기 힘듭니다. 종교적·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국가의 사법 체계나 행정 시스템 마련도 미숙하죠. 하물며 무장집단인 탈레반 체제라면 더하죠.

핵심

이슬람의 탈을 쓴 자의적 정치

탈레반이 따르는 것은 이슬람이라기보다 자기 부족의 오랜 관습인 파슈툰왈리입니다. 이슬람은 통치의 정당성을 포장하고 내부를 포용하기 위한 명분 내지 얼굴마담에 가깝습니다. 이슬람은 이슬람주의로 전략적으로 활용될 뿐입니다. 이슬람의 율법 안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나 파슈툰왈리에 따라 총살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국제사회에서 탈레반의 대내·대외 정치에 대해 우려하고 그 폭력성을 염려하는 등 신뢰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 다음은 탈레반 체제의 앞으로를 읽어보는 '아프간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도서

<이슬람>, 렌 암스트롱 지음, 장병옥 옮김, 을유문화사, 2012.

<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노경아 옮김, 이다미디어, 2016.

뉴스

연합뉴스

탈레반 승리 선언…"전쟁 끝났다, 개방적 정부 구성할 것"(종합2보)

월간조선뉴스룸

여성차별과 무슬림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

조선일보

여성인권 존중한다던 탈레반, 부르카 안 입었다고 거리서 총살

중앙일보

"첫 생리는 남편 집에서 하라" 탈레반은 왜 여성에 악독한가

한국일보

탈레반이 추종하는 건 부족 관습..."여성탄압 계속될 것"

난민인권센터

[기고]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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