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는가

종교로 구원한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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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이슬람은 오늘날 19억명의 신자를 보유한 거대 종교입니다. 25억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교 인구를 차지하는 기독교의 다음 가는 숫자죠. 게다가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의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은 종교적 신념을 넘어 이를 따르는 국가, 사회의 행동 및 구성 원리로도 볼 수 있는데요. 변치 않는 종교적 가르침 아래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슬람의 태동은 어땠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배경

사회 구성 원리로서 종교의 기능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사회이자 종교를 살펴보기에 앞서 종교가 사회 체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종교는 관습, 도덕, 법과 함께 사회 구성원의 사고와 행위 양식을 이끄는 사회 규범이지만 때로 직접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사회를 제어하는 권력에는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당성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하죠. 만약 왕이 지닌 권력의 정당성이 단지 그 자리 자체에서 비롯한다면 누구든 빼앗아 차지하면 그만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 행정 수반의 통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은 대표성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돼 그 뜻을 대리하므로 국민에 발휘하는 권력도 정당하다고 보죠. 대의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제도적 과정이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셈입니다. 권력은 사회계약에 의해 시민으로부터 이양받은 것이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기능을 수행한 것은 신화와 종교입니다.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기에 절대적이라는 '왕권신수설'이 대표적이죠. 고대 이집트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서 왕은 곧 신이거나 신의 아들이거나 하다못해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왕권에 가장 큰 정통성으로 작용하는 혈통 역시 계보를 거슬러 오르면 신성(神聖)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신화의 형식을 빌려 전해졌죠. 권력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이에 대항하는 일은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 중심 사회였던 중세를 지나 인간의 주체성과 이성을 강조한 근대 계몽주의 물결은 종교적 부패를 척결하고 인간 중심 사회를 꾸려보고자 한 움직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만의 능력인 '이성'에 힘을 싣고 제도와 이념을 정교화하기에 이르죠. 인간성을 긍정할 뿐만 아니라 법으로써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제약을 만들고, 국가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로 나누어 견제하는 삼권분립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주체성을 긍정한 근대 사회는 어느 정도 실패를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자유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돈의 가치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배금주의를 낳았죠. 자본의 추구와 만난 자유는 모두들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영끌'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회주의의 기반이 되는 공산주의 역시 그 공공의 재산이 공산당원의 것이 되거나 역시 자본주의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욕망 앞에 생각만큼 이념과 제도의 작동은 수월하지 않습니다. 윤리 역시 마찬가지죠.

욕망으로 인한 인간의 불완전성, 근대화에 대한 실망은 다시금 종교를 소환하게 합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정교(政敎)가 분리되었던 지역에서도 종교가 공동체적 삶에 분명히 반영되길 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흔히 얘기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사회적 홍역을 치유하거나 자본, 권력 등 사회적 자원에 대한 또 다른 정당성의 근거로서 다시 종교를 찾는 움직임이죠. 이후에 더 다룰 예정이지만 탈레반이나 IS, 이슬람주의의 동력이 되는 사고이기도 합니다.

대상

이슬람의 탄생

610년 사도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은 종교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Quran)은 신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사회 또는 국가와의 관계까지 규정합니다. 또 다른 경전인 하디스(hadith)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해 전하는 것으로, 이는 이슬람의 신자인 무슬림이 따르는 행동의 모범이 됩니다.

이슬람이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것은 내용과 기능뿐이 아닙니다. 이슬람은 태동에서부터 정치적 목적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이슬람 발생 이전 아라비아반도의 삶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이전은 암흑의 시기라는 뜻에서 '자힐리야'(jahiliya)로 불립니다. 아랍어 자힐리야의 사전적 의미는 '무지'이며 신에 대해 무지한 상태를 가리키지만, 당시 사회의 혼란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이슬람의 발생지인 아라비아반도는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농사는 오아시스 인근이나 일부 산악지대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했죠. 대다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구도 적었으며 강력한 국가가 수립되지 못한 상태였죠. 파편화된 부족사회만이 존재했으며, 생업은 무역이나 약탈에 의존했죠. 생존을 위한 부족 간 전투가 비일비재해 호전적인 남성 중심 사회가 됐으며, 때문에 여성의 권리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지역을 아우르는 이념이나 종교 또한 있을 리 없어 질서 또한 부재했습니다. 부족마다 제각기 원시적인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의 모습을 띠고 있었죠. 오늘날 이슬람의 성지로 여겨지는 메카(Mecca) 중심에는 '카바'(Kaba)라는 이름의 신전이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 부족들이 숭배하던 우상이 360개 이상 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니 사회적 통합은 힘든 일이었죠.

그런 와중에 당시 아라비아반도를 끼고 두 제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틴 제국인데요. 이들에는 이미 기독교와 유대교라는 일신론적 종교가 퍼진 상태였습니다. 아라비아반도에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일신론적 종교관이 확산하고 있었죠. 일부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신봉하는 하느님이 그들에게 신을 의미하는 알라(Allah)와 같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라가 아랍 민족에게 직접 경전이나 선지자를 보내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이때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이 일신론을 바탕으로 이슬람을 창시하고 무력으로 메카와 메디나(Medina)를 통일해 국가를 세운 인물이 바로 사도 무함마드(570~632)입니다. 그는 당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제대로 결집하지 못하던 아랍인들을 모아 이슬람 제국의 주인으로 만들기에 이릅니다.

내용

이슬람이 구성한 세계, 왜 이슬람이 필요했나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은 아랍 민족을 결속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강조한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전반적인 사회개혁과 정의를 설파했습니다. 오히려 정치가 내지 사회개혁가에 가까운 모습인데요.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빌려 빈부격차와 지나친 물질 숭배, 상류층의 타락과 개인주의, 권력 남용 등의 사회적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 앞에서 모든 무슬림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퍼뜨리며 사회를 바꾸는 데 앞장섰죠. 파편화되어 서로 갈등과 복수를 일삼던 모든 집단은 보복을 중단하고 서로 협력하며 공존한다는 것이 그가 고향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서 초기 이슬람을 확장하며 주민들과 합의한 헌장의 주요 내용입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한 일은 '거룩한 도망'(성천)이라는 의미로 히즈라(Hijrah)로 불립니다. 이슬람 신앙공동체인 움마(Ummah)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기에 이 날짜인 622년 7월16일을 이슬람력 원년 1월1일로 삼죠.

무함마드의 이슬람 창시는 당시 아랍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선 전통과 규범이 훼손되고 전쟁과 불의가 만연했습니다. 그의 고향 메카는 무역으로 번창하는 상업 도시였으나 물질 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렸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이슬람에서 사유재산의 과도한 축적을 경계하며 약자를 존중하고 부의 나눔을 선한 일로 여깁니다.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는 통합된 공동체인 움마와 유일신에 대한 종교는 아랍 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던 셈이죠.

비교

이슬람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두 가지 원칙

이슬람은 중동의 다른 양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와는 태동부터 다릅니다. 이는 창시자 무함마드의 지위와 역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선지자 모세와 예수는 모두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신도들을 가나안과 예루살렘에 이끄는 사도로서의 역할만 수행했습니다. 반면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슬람의 터전에 정착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메카와 메디나를 통합하고 이후 이슬람 제국을 팽창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가 하면 정치·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죠.

그중 이슬람의 정치적 권위를 공고히 한 시스템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성직자 계급 없음

이슬람에는 사제와 같은 성직자 계급이 없습니다. '이맘'이라는 지도자가 존재하나 평신도이며 예배를 이끌고 설교를 할 뿐입니다. 게다가 남녀노소, 배움과 재산을 막론하고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라 앞에 평등하며 이슬람의 예배당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통해 직접 신과 소통합니다. 또한 경전과 신학을 공부한 학자인 울라마(ulama)들만 존재하는데, 이들은 정부의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의 해석이나 종교 재산 관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성직자는 없고 공무원만 있는 셈이죠.

2️⃣ 누구에게나 행사할 수 있는 '십일조'

이슬람에는 기독교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자카트(Zakat)가 존재합니다. 이는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로 수익의 2.5%를 내야 하죠. 그러나 그 대상은 꼭 교회가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누구에게라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난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과도한 부의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또한 돈이 특정 종교기관에 모이는 일도 방지하죠.

위 두 가지를 종합하면 이슬람에는 종교를 위한 사제도 돈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기관이 왕이나 권력과 유리되어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우위를 점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 제도입니다. 이슬람의 영향력은 특정 권력이나 기관에 매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가 종교 외 이념이나 이익을 추구하면 오히려 그 생명력은 짧아집니다. 중세의 암흑시대 종교의 권위가 극에 치달아 부패했던 때처럼요.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권력 추구와 분리함으로써 14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한 셈입니다.

💡 다음은 쿠란, 하디스, 샤리아법 등 이슬람의 사고와 행동의 근거를 살펴보는 '이슬람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가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도서

<세 종교 이야기>, 홍익희 지음, 행성B잎새, 2014.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서정민 지음, 시공사, 2015.

<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지음, 지식프레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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