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의 무게에 눌려 굳어버린 환경

기적에서 역적으로: 물질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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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2021
이진호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환경을 파괴하는 여러 물질 가운데 대표주자로 꼽히는 플라스틱. 그런데 비단 플라스틱만의 문제일까. 쇠는 지구가 깡통 세계가 되는 데 일조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과 이를 그대로 머금은 채 쏟아지는 쓰레기로 지구가 굳어가고 있다.

깡통이 세운 세상, 지구도 딱딱해졌다

환경에 빨간불을 켠 게 플라스틱만이랴. 철이나 구리, 알루미늄 같은 금속 물질을 아우르는 세칭 '쇠'도 지구의 혈액을 응고시키고 있다. '고철 덩어리' '깡통' 같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어떤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됐다거나 바보 같은 느낌일 터. 예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쇠도 환경오염에 일조했다.

사실 쇠는 산업 발전사(史)의 묵직한 기둥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다리나 철로, 건물 등 기간시설을 마련하는 뼈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단단한 성질처럼 세계의 산업을 탄탄하게 지탱했고 우리 삶도 함께 든든해졌다.

영국은 18세기 말 쇠를 녹이는 고로(高爐)를 개발해 대량 생산의 물꼬를 텄다. 고로 개발이 철강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 세계 철강 생산은 2830만톤, 50년이 흐른 1950년경에는 약 2억톤 수준으로 늘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철강 소비는 연평균 2.3%씩 늘어나며 계속 몸집을 불렸다. 폭넓은 산업적 용도 때문인지 쇠는 '산업의 쌀'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 쌀을 먹고 컸다. 6·25 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던 우리나라가 포항제철(현 포스코)로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2020년 전 세계 조강(쇳물) 생산량은 총 1조8억6900만톤인데 우리나라는 그중 7200만톤을 담당해 세계 6위권의 철강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를 떠나 쇠는 플라스틱 못지않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오늘 일과를 들여다보자. 편의점에서 사 먹은 캔음료 하나, 내가 운전대를 잡았던 자동차, 스마트폰에 들어간 수백 개의 납땜. 시원한 과일이 기다리고 있는 냉장고. 퇴근 후 몸을 누인 집 벽에 들어간 철골까지… 철강산업의 손길은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환경의 관점에서 쇠를 바라보는 시각은 호의적이지 않다. 구리나 알루미늄, 철 같은 금속들은 반대로 지구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먹고 버린 콜라캔을 볼까. 캔 하나가 땅속에 묻힌 후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내가 버린 캔 하나가 오롯이 사라지는 데는 내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 손주가 태어났을 때나 겨우 가능하다.

이런 작은 예 외에도 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 전반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나씩 살펴보자. 고로에 쇠를 녹이는 과정서 많은 온실가스가 나온다. 철강산업은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종이다. 2019년 배출량은 1억1700만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6.7%를 차지한다. 두 번째인 석유화학업종(약 7100만톤)과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제조업 카테고리로 범위를 좁혀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9 에너지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를 보면 2019년 제조업 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각종 금속광물을 가공하는 제1차 금속산업(38.2%)이다. 화학 19.0%, 정유 10.9%보다 높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연이나 카드뮴, 수은이나 망간 같은 유해물질 배출, 폐수에 섞여 배출되는 쇳가루 문제도 있다. 대기오염은 물론이거니와 토양에 흡수되거나 하천에 흘러 들어가면 우리가 먹는 식물이나 물고기 등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IT가 만든 깡통 시대

IT 시대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오늘. 책상에는 고성능 데스크탑, 소파 앞에는 TV,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귀에는 금속 진동판이 들어간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혔다. 손목에 감긴 스마트워치가 뿜는 광택이 눈부시다. 이 글은 노트북으로 썼다.

IT 시대 속에서 전자제품은 이렇게 삶과 밀접히 닿아있다. 지루한 삶의 여백을 전자제품이 채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쇠는 든든한 뼈대다. 기판에 쓰인 수백 개의 납땜과 반도체. 이를 감싸고 있는 금속이 IT 시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허나 전자제품을 평생 쓰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TV의 평균 수명은 10.7년, 냉장고와 세탁기는 10년이다. 에어컨은 그보다 조금 더 긴 12.9년을 쓴다고 한다. 대략 10년을 동고동락한 뒤에는 모두 이별할 운명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같은 IT시대 총아(寵兒)들의 수명은 더 짧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새 전자제품을 지르는 데는 불을 켰지만 예전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른다. 오늘 만진 전자제품을 되돌아봤다. 스마트폰은 1년 남짓 썼고, 노트북은 100일이 안 된 따끈따끈한 녀석이다. 새 스마트폰이 손에 들어온 날 손때가 묻은 갤럭시 9+는 바로 중고업체에 팔아넘겼고, 노트북은 집앞에 내놓으니 3시간 만에 사라졌다. 그다음 행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디로 갔지?

국제연합(UN)과 글로벌 전자폐기물 통계 파트너십(GESP)이 발표한 '글로벌 전자폐기물 모니터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서 나온 5360만톤의 전자폐기물 가운데 17.4%만이 회수·재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를 버리면 8개는 새 생명을 얻지 못하고 스러진다. 유럽의 회수·재활용률이 42.5%로 가장 높았고, 아프리카가 0.9%로 가장 낮았다. 한중일 아시아 3국은 20%로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전자폐기물 배출량은 2030년 7400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극적인 변화가 없으면 이때도 10개 중 2개만 재활용될 테다. 문제는 재활용되지 않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CFC)를 비롯해 수은과 카드뮴, 납, 크롬, 비소 같은 중금속은 땅을 병들게 만든다. 식물과 물, 동물의 몸에 중금속이 녹아들고, 이를 먹은 사람들의 몸엔 적신호가 켜진다. 쇠의 역습이다.

돈의 논리까지 작용한다. IT 시대가 환경에도 부익부 빈익빈을 일으켰다. 아프리카 가나는 세계의 전자 쓰레기장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아그보그블로시라는 마을은 전자쓰레기의 종착지가 됐다.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협약'도 경제 논리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아그보그블로시 주민들은 선진국이 보낸 전자쓰레기를 분해하고 처리한다. 그 대가로 구리 같은 금속을 얻거나 부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이 과정서 유독물질을 그대로 들이마신다. 땅에 스며든 중금속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병들게 만든다. 마을에서 나온 달걀을 분석하니 다이옥신 허용치가 220배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런 촌극이 벌어진 건 선진국 입장에서는 재활용보다 밀반출에 들이는 돈이 적게 들어서다. 선진국은 후진국을 활용해 환경을 지킨다. 혹자는 이 현상을 '독성 식민주의'라 일컫기도 한다.

돌파구는 있는가

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철업계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환경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매일 밥 먹는데 쓰는 수저도 쇠다. 플라스틱처럼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집을 짓는데 철제 빔보다 더 튼튼하고 오래가면서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소재가 있다면 세기의 발명이 될 터. 수도관을 유리로 만들 수도 없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시장에서 무거운 금속을 대신하는 가벼운 소재가 각광받곤 있지만, 카본 같은 대체재 또한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허나 대체할 길이 없어 피하기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항상 살을 부대껴야 한다면 조금이나마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실마리는 생산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철강 1톤을 만들 때 이산화탄소 1.85kg이 배출된다. 2018년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 1~2위 업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로 나란히 철강회사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들이 환경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큰 그림은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여 제로로 만드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추세에 발 벗고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ESG 경영을 선포한 포스코는 탄소중립 달성을 천명했다. 탄소 배출의 선두주자(?)가 내놓은 선언이라 상징성이 크다. 쇳물을 만들 때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탈(脫)탄소를 하겠다는 건데 제대로 성공하면 철강은 환경오염의 주범에서 진정한 산업역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허나 막대한 설비투자 비용은 걱정이다.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위한 설비 개선 액수로 추산한 금액은 53조원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환경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배출되는 탄소를 가두는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도 언급되지만 비용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정부 지원이 핵심인데 아직 2050 탄소중립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형태의 투자 방식은 흥미롭다. 현대제철은 '녹색채권'을 발행해 탄소감축을 비롯해 에너지 효율화 등 친환경 활동에 채권 자금을 투입한다고 한다.

전자폐기물 문제도 생산 쪽에서 풀어갈 수 있다. 선택지는 생산업체가 제공하니 이쪽이 맞다. 유해물질을 머금은 폐기물로 버려질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제품을 만든다거나, 가급적 탈탄소 방식으로 만든 금속을 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작게는 스마트폰 수명을 늘리는 건 어떤가. 우스갯소리로 "스마트폰은 약정이 끝나는 2년이 넘어가면 고장 난다"는 말이 있다. 제조사들이 2년에 맞춰 자살타이머를 설계한다는 웃픈 이야기도 나온다. 대부분은 쓸수록 줄어드는 배터리 수명을 스마트폰 교체 이유로 꼽는다. 정부가 스마트폰과 노트북 품질 보증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점은 반갑다. 고장이 나도 교체보다는 수리를 택할 사람들이 늘어난단 이야기다. 패키지에서 충전기가 빠지는 추세도 불필요한 낭비를 막는다는 점에서 환경에 청신호다.

시스템 차원의 개선에 더해 시민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은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졌는지. 버리는 단계에서 재활용이 가능한지 확인해본다든가. 철강회사가 정말 탄소중립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식이다. 친환경 부품이나 패키지를 쓴 제품을 사고, 가급적 교체보다는 수리해 쓰는 것도 괜찮다. 영화 <승리호>처럼 고철쓰레기가 넘실거리는 미래를 맞지 않으려면, 편리함 너머의 부작용을 당장 들여다봐야 한다. 환경에 나중은 없다.

입는 것 , 먹는 것도 하나씩 들여다보자. 조금이나마 환경오염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다. 내가 입은 옷이 어디서 왔는지, 오늘 먹은 음식이 어떻게 환경에 흠집을 냈는지 되돌아 보자. 내 '몸'은 환경에 어떤 색깔을 칠해왔을까.

💡 다음은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의, 옷이 오염시킨 땅에서 바로 입기'로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쓰레기책>, 이동학 지음, 오도스, 2020.

쇠가 됐든 플라스틱이 됐든 종착지는 쓰레기다. 인류는 쓰레기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원인이라도 알아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작가는 2년 간의 세계여행에서 돌아와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처리 방법, 문제 극복 방법을 담은 '쓰레기책'을 내놨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담담하게 바라 본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쓰레기 문제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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