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혈액이 된 플라스틱

기적에서 역적으로: 물질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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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2021
이진호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물질과 가장 가까울까. 잠깐만 눈을 책상 앞으로 돌려볼까.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그들 '플라스틱'이 눈앞에 보일 테다.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을 바꾼 기적의 소재기도 하지만, 지구의 모습을 바꾼 역적으로도 손꼽히는 녀석이다. 플라스틱은 환경에 어떤 색의 밑줄을 그었을까.

플라스틱에 휩싸인 지구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지나온 지구.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화한 인간만큼이나 플라스틱이라는 신박한 물질은 눈길을 어디로 돌려봐도 발견된다.

플라스틱은 '열 또는 압력에 의해 성형할 수 있는 유기물 기반 고분자 물질 및 그 혼합물'로 정의된다. 뜨겁게 열을 가하거나 조물거려서 모양이 만들어지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색깔도 다양하게 입힐 수 있고 가벼운 무게와 범용성 덕에 플라스틱이 안 들어가는 물건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에 플라스틱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소리까지 듣는다.

1800년대 자연에서 얻은 천연수지를 활용해 만들어진 '셀룰로이드'를 플라스틱의 기원으로 본다. 열로 녹이면 어떤 모양으로도 바꿀 수 있고, 단단하지만 탄력을 머금은 특성으로 사랑 받았다.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한 '폴리에틸렌'. 지금의 플라스틱의 대명사가 된 물질이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 폴리에틸렌이 중요한 것은 바로 '비닐의 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지며 가격이 하락한 폴리에틸렌을 활용해 비닐봉투를 개발했다. 이전까지 잘 찢어지는 종이나 무거운 천 가방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인류사 입장에서 비닐봉투는 그야말로 '대박사건'이었고,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폴리에틸렌을 필두로 일명 스티로폼으로 불리는 폴리스티렌을 비롯해 나일론, 폴리에스터, 폴리우레탄, 폴리프로필렌 등 이름 앞에 폴리(Poly-)가 붙는 수많은 플라스틱 원료들이 삶 속에 침투했다. 지금 우리는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을 신고, 폴리스티렌으로 감싼 냉동식품 택배를 받고,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휴대폰 케이스를 쓰며 플라스틱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다. 가볍고 싸고 모양도 마음대로 만들어주니 이보다 편한 물건이 없다.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으니 수요가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 당장 눈앞을 보자. 굴러다니는 커피 테이크아웃 컵이나 빨대, 볼펜 등 눈에 들어오는 십중팔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1950년 150만톤이던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9년 3억6800만톤으로 250배 가까이 뛰었다. 개발지상주의 속에서 플라스틱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플라스틱의 역습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하루라도 만나지 않은 날이 있을까. 편리함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환경은 병들어간다.

이제는 플라스틱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바꾼 세상은 편의와 함께 부작용도 낳았다. 툴린이 비닐봉지를 만들었던 이유는 자못 역설적이다. 종이봉투를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많은 나무들을 걱정했던 게 개발의 기원. 그러나 비닐봉지의 싼 가격 탓에 무분별한 쓰레기가 나온 것은 생각 밖의 일이었다. 환경을 생각한 발명이 더 큰 환경파괴를 불러온 꼴이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1인당 페트병과 플라스틱컵, 비닐봉투 등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11.5kg다. 개수로 계산하면 PET병은 96개(1.4kg), 컵은 65개(0.9kg), 비닐봉투는 460개(9.2kg)를 각각 쓴다. PET병은 나흘에 하나 쓰고, 컵은 닷새에 하나를 쓴다. 비닐봉투는 하루에 하나 이상 쓰는 셈이다. 지난 2019년 우리나라에서 방치되거나 버려진 각종 쓰레기는 120만톤. 이중 적지 않은 부분이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 규모를 넘어 환경에 큰 나비효과를 낳는 게 문제다. 1분마다 트럭 한 대를 채우고도 남는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쏟아져 들어간다고 한다. 해양환경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바다 쓰레기의 83.4%가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이 파도에 쓸리고 바위에 부딪히며 쪼개진다. 물고기의 뱃속에서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이 나오는가 하면 이는 상위포식자 또는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거북이를 휘감은 비닐봉투의 처참한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다. 플라스틱은 잘게 쪼개져도 여전히 플라스틱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낳는다. 흡사 지구의 혈액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꼴이다.

플라스틱의 연못이 된 바다에서 자란 생물들은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른다. 한선기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한국보건학회 학회지에 낸 논문을 보면 유럽에서 조개류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연간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연간 1만1000개. 우리나라 국민도 유럽인 못지 않게 조개를 많이 먹을 테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우리 입에 들어오는 세상. 혈액 속에 플라스틱이 흐른다.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돌고 돌아 우리의 피를 오염시킨다.

여기에 더해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화학 부산물은 환경에 진화가 아닌 후퇴를 일으켰다.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드는 물질인 가소제는 장시간 노출될  경우 신장이나 생식 기능에 영향을 준다. 플라스틱은 튼튼하면서도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야 하는 아기욕조에 널리 쓰인다. 근데 아기욕조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나왔단다. 쓰임의 역설일까. 난감하기 짝이 없다.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쓰레기가 나온다고 해서 안 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안 쓰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아니 플라스틱 자체의 잘못도 아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만큼 편하고 널리 쓰이는 물질이 지구상에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로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플라스틱. 코로나19는 인간을 힘들게 했어도 플라스틱에는 기회를 주는 모양새다. 방역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 위생과 편의성 측면에서 플라스틱을 뛰어넘는 물질은 찾기 힘들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제작하기 쉬워 주사기, 가림막 같은 방역물품으로 재깍재깍 만들어졌다.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금. 플라스틱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용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로 다가온다. 모든 인류가 플라스틱 주사기를 통해 백신을 맞는다. 인류의 희망이 플라스틱에 담겼다. 손가락 만한 주사기가 되기 위해 몸을 녹인 플라스틱은 코로나19 종식에 온 몸을 바친다. 우리나라는 올해 9월까지 전국민 70% 이상 백신 접종이 목표다. 종류에 따라 2회 접종이 필요한 경우는 접어두더라도 3000만개 이상의 주사기가 인간을 위해 투신한다. 애증이 교차했던 플라스틱이지만 이번에는 백번 절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비대면 시대 늘어난 배달 문화에서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지분도 크다. 늘어난 배달용기 수요를 유리나 종이가 모두 감당할 수 있었을까. 답은 '절대불가'일 테다. 플라스틱은 또한 사람들 사이 거리두기에 필요한 투명 가림막으로도 만들어져 활용됐다. 접촉을 막기 위한 비닐장갑도 플라스틱의 산물이다.

하지만 주사기를 비롯해 배달용기나 비닐장갑, 비말이 튄 가림막 모두 두 번 쓸 수는 없다. 한 번 제대로 살고 떠나야 하는게 이들 플라스틱의 운명. 이들은 쓰레기장으로 흘러가거나 녹아서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죽어도 죽지 않는 플라스틱. 정말 어떡해야 하나.

플라스틱 등 폐기물 문제는 전 세계 공통의 문제, 자원순환형 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선택 — 2018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 발표 당시 환경부

환경부는 지난 2018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제조와 유통, 배출, 수거, 재활용까지 플라스틱 사용 전반을 아우르는 관리 대책이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50%까지 줄이고, 재활용률은 34.4%에서 70%까지 높이는 계획이었다. 플라스틱과 공존은 어쩔 수 없지만 부작용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재활용분담금(EPR·Extended Producer Pesponsibility) 확대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이들이 향후 재활용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건데 필요한 비용을 먼저 떼 가는 일종의 선이자 형태다. EPR 대상 품목을 늘려 재활용업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양이 생산되더라도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 많이 걷히는 구조라 원활한 재활용 사업에 도움이 된다.

또 한가지는 일회용품 줄이기다. 대책에는 2022년까지 일회용컵과 비닐봉투 사용량을 35% 저감하는 내용이 담겼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가장 큰 암초를 만난 부분이다. 사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했지만,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경계' 이상으로 바뀌며 상황이 급변했다. 경계 단계에서는 카페 내 플라스틱컵 사용금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에 예외를 둔다. 카페 내에서 커피를 먹더라도 일회용컵 또한 사용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 끌어내리려던 일회용품 사용량이 코로나19로 다시 폭발했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이 뾰족하지 않다면 우회로라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돌파구를 찾는 노력은 계속된다. 유통업계가 선두에 선 모양새다. 'ESG' 경영의 영향이 컸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릿글자를 딴 ESG는 최근 기업들의 경영 철학으로 각광받는다. 여기서 'E'에 방점을 맞춘 유통업계는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친환경, 재활용 포장재를 사용하거나 재활용 패키지 도입을 서두른다. 경영적 차원이든 이윤추구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든 어쨌든 움직임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아예 플라스틱 소재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전분 등 원료가 환경친화적이고, 분해도 기존 플라스틱보다 빠르다. 이미 100% 자연분해 생분해성 수지인 'PLA'(옥수주 전분 성분 친환경 수지)와 'PBAT'(생분해성 고분자)가 상용화됐다. 생분해 플라스틱이라고도 하는데 짧게는 1년 정도면 썩는다고 한다. 기존 플라스틱이 썩는 데 500년가량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이미 옥수수 전분을 활용한 필름과 빨대, 컵 등이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 재활용이 쉽도록 PET병에 별도의 라벨을 붙이지 않고 제작하거나 곡물 등에서 추출한 요소로 플라스틱 대체 물질을 만드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람들도 바뀐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4%가 플라스틱 포장이 과하다 느꼈다고 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 대부분은 플라스틱 줄이기에서 시작된다.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쓰고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들의 제로 웨이스트 이야기를 전한다. 비닐봉투를 받지 않으려 에코백을 들고 온 손님을 이상하게 보는 상점은 많지 않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익숙해졌단 얘기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17년 2649억달러 규모였던 재활용 시장은 2024년 3676억달러로 커질 거라 한다. 하지만 이게 계속될지, 잠시 유행으로 끝날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생분해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 지원을 늘린다고 한다.

어쨌든 노력은 시작됐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닐의 발명처럼 천지개벽할 발전이 이뤄지기 전까진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동안 환경은 울상짓는다. 바다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우리 몸속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흐른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할 텐데 지켜볼 일이다.

💡 다음은 우리 삶에 활용되는 금속들의 이야기를 담은 '쇠의 무게에 눌려 굳어버린 환경'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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