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토론 시리즈

미국 대선 2020: 대법원

대법관 임명 절차가 당파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나

배경

대선을 1주 남짓 남기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임한 에이미 코미 배럿 대법관 후보가 기어이 공식 임명되었다. 4년전,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가 대선이 8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공화당의 반발로 인준 단계조차도 밟지 못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결국 상원을 주도하는 공화당의 의도대로 미국의 대법원은 6:3의 비율로 보수 성향의 판사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에 대법관을 선임하는 방식과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 되었다.

대법원의 막강한 정책 영향력

공식적으로 미국의 대법원은 '사법적 보수주의' 원칙을 따른다. 이는 사법부가 국가의 삼권분립 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민주적 절차로 뽑히지 않은 인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법과 헌법 사이의 갈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원칙이다. 물론 대법원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은 늘상 해야 하지만, 그 판결이 투표로 표현된 대중의 의견에 맞설 경우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재판관 자신 외에는 이러한 원칙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이 헌법을 옹호하는 것인지, 다수 대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관을 선임하는 대통령과 그를 심사하는 상원의원, 그리고 언론 및 여론에서 판사의 정치 성향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당장 최근 몇년간 대법원은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정책, Affordable Care Act (일명 오바마 케어), 그리고 몇몇 주의 낙태법에 대해 모두 5:4 근소한 차이로 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 유일하게 투표로 뽑히지 않은 공직자가 이민법, 건강보험 제도, 그리고 여성 인권 등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입법한다?

Roe v. Wade 판결

엄격한 '사법적 보수주의자', 특히 낙태 반대자에게 이 1973년 판결은 “사법부에서의 입법”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헌법이 작성된 당시의 언어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성숙한 사회의 진전되고 진화된 기준에서 그 의미를 이끌어 내야한다"고 선언하며, 헌법에 명시된 사생활의 권리(privacy)로부터 낙태의 권리를 도출했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번 대선에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Citizens United v. Federal Election Commission 판결

낙태가 합법이라고 미국 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무렵,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가들을 뒤에서 조정하는 비밀 돈과 영향력 행사를 위한 기부의 사례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닉슨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의회에서는 돈으로 정치인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두가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통과된 1974년의 연방 선거 위원회 법 개정안, 그리고 2002년의 양당 캠페인 개혁법. 종합해서 이 법안들은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과 정치판을 보이지 않게 조정하는 자금력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는 핵심 원칙을 설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74년의 Buckley v. Valeo 판결과 2010년의 Citizens United 판결로 입법부의 이러한 노력을 사실상 무마해버렸다. 개인이나 단체가 정책을 지지하며 돈을 쓰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 미국 선거 과정에 사용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이를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쉬워져 정치인의 평균 자산도 마찬가지로 늘어났다.

이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결과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미국 대법원의 정책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하다.

대법관 선임 과정의 문제점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 대법관들의 임기는 제한이 없고, 임의로 교체 시기가 오면 대통령이 선임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와 연방 판사 후보는 상원에서 청문회에 이은 투표로 임명한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대통령과 상원이 엄청난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그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시기는 랜덤이지만, 결국 상원의 승인을 거쳐야만 대법관이 임명되기 때문에, 상원의 다수당이 결정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현재 상원을 주도하는 공화당과 상원의장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은 이 권력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했던 대법관과 연방 판사 임명은 최대한 저지하면서, 트럼프가 지명하는 판사들은 일사천리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정치 공작에 의해 오바마는 8년간 2명, 트럼프는 4년에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임명했으며, 연방 판사 또한 오바마는 8년간 142명, 트럼프는 4년간 280명이나 임명했다.

판사 임명 절차가 당파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우려가 생긴 이유다. 그래서 최근 민주당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하는 방안이 대법관의 임기 제한을 세우고, 대법원의 의석 수를 늘리는 것이다.

쟁점

대법원의 의석 수를 늘려야 할까?

바이든

공화당의 정치 공작에 대응하는 정당한 정책이다

일명 Court Packing 전략이다. 판사 한명 한명이 가지는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의석 수를 늘려서, 대법원이 정치적 연유로 휘둘리지 못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한 당장 6:3으로 보수 성향으로 기울어진 대법원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공화당의 정치 공작에 맞서야 한다: 법원 확장 정책은 일방적인 권력 장악이 아닌 공화당의 정치 공작에 대응하는 방어적 행동이다. 2016년,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은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 사망 후, 대선 연도에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메릭 갈랜드(Merrick Garland) 후보에 대한 투표를 거부했다. 그런데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이 사망한 이후에는 대선을 불과 몇 주 앞두고 새로운 대법관을 임명했다. 권력에 의해 임의대로 대법관 선임이 이루어져 보수 성향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법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보수 성향의 대법원은 실제 미국을 대표하지 못한다: 배경 설명에서 언급 되었듯이, 최근 미 대법원은 논란이 되는 중요한 정책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와 비교해 민주적 절차로 뽑힌 공직자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는 미국 국민의 47%는 민주당, 42%는 공화당을 지지하고, 대다수가 낙태권을 지지하며,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를 원한다. 그러나 최근 임명된 배럿 판사에 의해 더욱 기울어진 대법원은 낙태권, 이민 정책, 의료 보험 정책 모두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의석 수를 늘리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헌법에 대법관의 숫자가 명시되지 않았으며, 이전에 여섯 번이나 변경된 경우가 있었다. 6명의 판사로 1789년 창설된 대법원은 대통령과 의회의 변덕에 따라 5명에서 10명 사이를 오갔다. 1869년 법 개정 이후 의석 수는 9명으로 정해졌고 그 이후로 바뀌지 않았지만, 다시 그 숫자를 조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트럼프

대법관 의석 수는 유지되어야 한다

상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대법관을 임명할 권리가 있다: 대법관 임명이 다수 당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유권자는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을 선택했고, 공화당은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대법원 의석 수를 늘려 진보 성향의 판사를 앉히려는 행위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치 공작이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동이다.

양당에서 서로 의석 수를 늘리면서 대법원에 간섭하게 될 것이다: 독립적인 기관이어야 하는 사법부가 권력 다툼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민주당에서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후 의석 수를 늘려 대법원을 진보 성향으로 기울게 한다고 치자. 다음 대선에서 만약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 같은 방식으로 의석 수를 조정해 대법원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나쁜 선례를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쟁점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해야 할까?

바이든

공직자의 무제한 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법관 임명 과정의 정치적 편향 가능성을 줄인다: 대법관은 현재 미국 역사상 어느 시점보다도 평균적으로 오래 근무한 후 (28년) 은퇴하고 있다. 종신 임기는 판사들에게 스스로와 성향이 맞는 대통령이 백악관에 앉을 때까지 법정에 머물도록 하는 비뚤어진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법관을 지명할 때도, 정직하게 봉사하고 폭 넓은 인생 경험을 가진, 직위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찾는 것이 더 이상 우선 순위가 아니다. 대신, 다가올 수십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젊으면서도 이념적인 (그리고 청문회에서 말을 잘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다. 일례로 최근 임명된 배럿 대법관의 판사 경력은 단 2년이다.

대법관의 임기를 제한하고 임명 과정을 정기화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대통령마다 두명의 판사를 선임함으로써 임명 시기의 임의성을 없애고, 대법원이 보다 대중의 의견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공정성에 기반한 기관에 공정성을 복원하는 정책이다.

트럼프

대법관의 임기를 유지해야 한다

대법관 임명 과정을 더욱 정치화 시킬 것이다: 대법원에 임명된 판사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오히려 가장 극단적으로 자신의 성향에 맞는 판사를 찾으려 할 것이다. 미국 의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감안할 때, 이는 임명 과정을 더욱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대법관 임명 이슈는 일부 대선에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안정적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역할인 대법원이, 결국 2년마다 양당의 정치적 공방의 싸움터로 바뀔 것이다.

쟁점

바이든

트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