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르지 못한 닥터헬기

이국종 vs 아주대...외상센터의 미래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은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석해균 선장과 2017년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의 총상을 기적적으로 치료하면서 국내 최고의 외상외과 전문가로 떠올랐습니다. 최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이 이국종 센터장에게 폭언하는 대화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물론 유희석 의료원장의 욕설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절대 악과 절대 선의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화 녹취록의 이면에는 어떤 핵심적인 문제가 있는지, 똑똑에서 짚어보겠습니다.

🏣 중증외상센터, 필요한 건 알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75만 명이 외상 사고를 당하고 이 중 3만 명이 사망합니다. 중증외상센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은 2015년 30.5%에서 2017년 19.9%로 2년 만에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15%), 일본(10%) 등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입니다. 심각한 경우 환자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외상사고의 특성상 이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중증외상센터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만 봐도 그렇듯, 외상센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습니다. 중증외상센터는 업무 특성상 집중치료병상이 필요하고, 전문 의료진이 항시 대기해야 하며, 환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수 차례의 수술과 고가의 약품이 필요합니다. 병상이 부족하고, 인건비가 한정되어 있으며, 국민건강보험의 수가제도 심사를 받아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이러한 외상센터를 결국 적자투성이로 생각합니다. 201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3월~2018년 2월 1년간 아주대∙부산대∙울산대병원 중증외상센터의 평균 손익률(환자기준)은 -21.2%에 달했고, 국고보조금을 반영하더라도 여전히 -10.4%로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외상 환자 1인당 평균 145만 9,000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병원 수뇌부와 경영진 입장에서는 적자를 내는 외상센터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료=한국보건산업진흥원)

📉 적자만 낸 건 아니다

그러나 아주대병원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국종 교수가 이끄는 외상센터는 병원의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선 정부가 300억원을 들여 설치한 외상센터가 본관에서 분리되면서, 100병상 가량의 추가 환자를 유치하는 경제적 효과를 견인했습니다. 병원 이익이 2015년 72억원에서 2018년 623억원으로 3년 만에 8.7배 증가한 것도 외상센터의 성장과 완전히 별개로 볼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국종 센터장의 활약으로 아주대병원은 병원 홍보 등의 비경제적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아주대병원은 작년에 Newsweek가 선정한 세계 100대 병원에 선정되었고, 올해 1월에는 국가고객만족도 업종 공동 4위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이런 괄목할 만한 성장에 이국종 교수가 이끄는 중증외상센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병원 내외부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아주대 의대 교수회는 지난 16일 유희석 의료원장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뭐가 다를까?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병원은 크게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으로 나뉩니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모두 수익을 중요시하지만, 그 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대학병원이나 삼성병원, 아산병원 등 우리나라의 모든 대형병원은 비영리병원입니다. 비영리법인이 세운 비영리병원은 이익을 남기긴 하지만, 그 수익금을 병원 시설 개선비나 인건비 등 병원 운영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영리병원은 병원을 세울 때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고, 그 병원이 돈을 벌면 주주들에게 배당해 줄 수도 있습니다.

2018년에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의 헬스케어타운에 녹지국제병원이 영리병원으로서 개설이 허가되었다가 취소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영리병원이든 비영리병원이든 수익을 추구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 지속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위해서

매일같이 닥터헬기에 올라타고, 24시간 항시 수술복을 입고 있으며, 고난도의 수술 끝에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이국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의료의 가치는 언제나 병원의 수익성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며, 이 점이 곧 병원의 고유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좀 더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형병원은 모두 비영리병원이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건비, 의료기기비, 시설비 등 병원 개선을 위한 투자가 이뤄질 수 없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현재 국고 보조금으로 외상센터의 적자를 일정 부분 충당하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국가가 손실을 부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생명 윤리와 수익성 간의 갈등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딜레마입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Melinta Therapeutics을 포함한 미국의 많은 항생제 회사들이 파산을 신청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는 항생제 구매 비용을 부담스러워한 병원들이 협상을 통해 약값을 내렸기 때문이며,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이 충분치 않아 보건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처럼 수익이 없는 의료서비스는 결코 지속적이지 않으며, 만약 이러한 필수 서비스가 어쩔 수 없이 중단된다면 사회적인 파장도 엄청납니다.

다행히도 보건복지부는 현재 외상센터의 손익 구조가 지난 2018년 연구 때의 만성적자보다는 크게 개선되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연구 시점 이후 외상센터 의료수가가 인상되었고 전문의와 간호사 충원을 위한 정부 지원도 대폭 늘렸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한 필수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국고 보조금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등과의 연계를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합니다.

👨‍🏭 제2의 이국종이 나와서는 안된다

국내 최고의 외상외과 전문가인 이국종 센터장의 사직은 대한민국 의료계에 큰 손실입니다. 보건당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떠오른 의료계의 딜레마를 잘 헤쳐 나가고, 지속가능한 의료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도 똑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