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은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정신적·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중범죄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적으로 스토킹을 명확히 규정하고 따로 처벌하는 조항은 없었다. 스토킹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1999년 처음 발의 후 22년 만이다.
무엇이 '스토킹'이냐는 합의가 없었다. 스토킹 행위에 대한 규정이 없으니 스토킹 범죄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도 없었다. 기존에는 경범죄 처벌법 내 '지속적 괴롭힘'으로만 처벌이 가능했다.
내용: 경범죄 처벌법 제3조 경범죄의 종류에 속하는 41개 호 중 마지막에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을 지속적 괴롭힘으로 봤다.
처벌: 노상 방뇨, 음주소란, 장난전화 등 다른 경범죄와 마찬가지로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했다.
심각성: 애정표현과 구분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스토킹 범죄는 검거율이 높지 않았다. 2019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5468건이다. 검거 건수는 583건으로 약 10%만 처벌받았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린 사례 등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스토킹 범죄도 많다.
강력범죄의 전조: 스토킹 범죄만으로도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과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는다. 그러나 폭행이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최근 스토킹에서 시작해 일가족 살인으로 번진 '노원구 세 모녀 사건'은 진작 스토킹 처벌법이 마련됐으면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킹: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또는 가족)에 불안 또는 공포를 유발하는 다음의 행위.
여기까진 '범죄'로 보지 않는다.
스토킹 '범죄': 위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가 있거나 원활한 조사, 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 → 검사나 법원 판단으로 가해자 100m 이내 접근 금지, 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번에 제정된 스토킹 처벌법은 의미와 아쉬움 모두 분명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불안 또는 공포를 유발 ▲지속적 또는 반복적
모호한 기준: 문제 지적의 핵심은 스토킹 범죄의 정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무엇을 의사에 반하는 행위로 볼 것인지, 이유의 정당성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할지, 인정할 불안 또는 공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몇 번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지와 같은 물음이 남는다.
피해자다움 우려: 모호한 기준은 결국 피해자에게 입증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요할 우려도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는 없고, 단 한 번의 행위로도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으며, 이를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 강요'라고 지적했다.
반의사불벌조항 존속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경미한 범죄에 적용되는 건데, 이는 국가가 아직 스토킹을 바라보는 범죄의 경중이 낮다는 걸 보여준다. 회복적 사법이라는 면에서 반의사불벌죄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위원
언급됐을 뿐 세부 조치가 명시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주변인 보호조치: 스토킹을 정의하며 그 피해 대상에 '가족 또는 동거인'을 명시했지만 이들에 관한 구체적인 보호조치는 적혀 있지 않다.
피해자 보호지원: 피해자가 동의할 경우 관련 상담소나 보호시설로 인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대상 기관이나 운영 규정 등 제공하는 처분에 대한 정보가 빠져 있다.
과제가 남은 것은 입법부뿐이 아니다. 그동안 스토킹 처벌법 입법의 장애물이 됐던 사회적 인식 역시 변화할 필요를 맞았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연예인 집 앞을 지키던 이른바 '사생팬'은 물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 집 앞에 기다리는 행위도 반복적으로 벌어지면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라며 입법의 사회적 의미를 시사했다. 법이 적용되면 이전까지 신고 또는 처벌되지 않았던 행위에 대해서도 스토킹인지 아닌지 법적 실랑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하려는 그 행위, 스토킹인지 걱정된다면? 포인트는 반복된 행위다. 범죄는 감정과 무관하다. 상대방이 불쾌함을 표현할 때 그만둬도 뒤늦다. 따라다니거나 지켜보거나 막아서는 등의 행위 자체를 지속하면 안 된다.
국회: '국회 일 안 하냐'의 대명사인 숙제를 하나 끝냈다. 재보궐 선거도 코 앞이라 시간이 없었다. 당장 법안에 구멍이 좀 있긴 하지만 골자라도 잡아놨다.
국민: 10명 중 1명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다. 연락 없이 불쑥 찾아와 기다리거나 지나치게 많은 연락을 보내는 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겪은 스토킹이다. 처벌 강화에 대해 절대다수가 동의한다.
스토킹 피해자: 속이 터진다. 이제라도 된 건 좋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 너무 많았다. 시일을 이리 끌었음에도 법안이 야물지 못한 건 영 마뜩잖다.
내 연애관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야: 9월 말부터 범죄자 예약이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의 원인이 되는 정신증세로 망상과 피해의식을 지적한다.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시와 피해를 당했다는 분노에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편집증적 망상에 빠져 자기 혼자 '우린 특별한 관계'로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스토킹 범죄자들은 이러한 피해의식과 망상 때문에 상대방의 거절을 인격모독이나 모욕으로 보고 보복에 나선다. 그 결과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피해를 입은 것은 자신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이번 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십수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토킹에 대한 이해와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애'를 어떻게 형사 처벌할 거냐는 고릿적 사고방식은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는 고사하고 정의 자체를 어렵게 했다. 또한 신체적 폭력 행위가 없음을 근거로 경범죄로 인식했던 탓도 크다. 폭행이 발생하면 이미 존재하는 형법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것도 근거였다. '온전히 스토킹만으로는' 처벌도 어려웠고 수위도 낮았다. 여기에 스토킹 처벌법 내 응급조치, 잠정조치의 권한을 경찰, 검사, 판사 중 누가 주도적으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도 약 2년 동안 설왕설래했다.
영국은 스토킹 처벌의 모범국으로 꼽힌다. 1997년 만든 '괴롭힘 방지법'(Protection from Harassment Act)으로 스토킹 범죄를 규율해왔으며, 2012년 스토킹을 구체적 범죄로 명시했다. 2번 이상 위협이나 괴롭힘이 반복되면 처벌하고,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폭력의 공포를 느끼게 하면 범죄가 성립한다. 경찰은 현장에서 스토킹 범죄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재산을 수색할 수도 있다. 2019년 3월에는 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해 스토커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부과하는 등 경찰의 사전 개입 권한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