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도 과목 고른다, 고교학점제

2023년부터 앞당겨 시행, 넘어야 할 고비들
에디터의 노트

미드를 볼 때면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수업을 골라 수강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다소 달라 보이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딘가 멋져 보였달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도 곧 그렇게 바뀐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상당한 변화인 것 같은데 과연 학생들에게 득이 될까요, 실이 될까요. 교육이 크게 들썩이는 가운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 한눈에 보기

🔥 왜 중요한가?

대학생처럼 과목 선택?

  • 2023년부터 고교학점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 고교학점제는 대학생처럼 고등학생이 적성에 따라 과목을 택해 수업을 듣는 제도다.
  • 교육을 뒤바꿀 수 있는 커다란 변화다. 그간 단점이라고 지적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성공할까

  • 교육계에선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대입이 목표인 현 교육 체제서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겠냐는 것.
  • 우려를 딛고 제도가 효과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큰 그림
청사진

고교학점제?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과목을 선택 수강한 뒤 누적 학점을 채우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로, 문재인 정부의 대표 국정과제다. 진로·적성에 따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해 자율성을 발휘하는 데 취지를 뒀다.

지난해 마이스터고에서 처음으로 시행됐다. 원래 일반고엔 2025년에 도입되기로 했으나 시행 시점을 2년 앞당겼다. 현 중2가 고등학생이 되는 2023년부터 시작해 2025년에는 고교 1~3학년이 모두 고교학점제를 따른다.

도입되면 뭐가 바뀌나

선택과목: 학교에선 학생 수요에 따라 선택과목을 개설한다. 1학년 때는 공통과목인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며 진로 계획을 세우고, 2·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선택과목을 이수한다.

수업 시간↓: 수업량 기준이었던 '단위'가 학점으로 바뀌며 수업 시간이 줄어든다. 원래는 6교시까지 수업하는 날이 주1일이지만, 2023년도 192학점제부턴 일주일 중 약 3일은 7교시에서 6교시로 단축돼 여유 시간이 생긴다.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 시간도 생겨 진로, 학업 상담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미이수제: 2025년엔 '미이수제'가 시행된다. 최소 성취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학업성취율이 40% 미만, 출석률 2/3가 되지 않는 학생은 해당 과목을 한번 더 듣게 하는 제도다. 단계적 이행 기간 동안 실시되는 최소 학업성취수준 보장 지도는 미도달 학생 보충 지도 등 일부 과정을 미이수제와 유사하게 실시하나 실제 미이수 처리를 하진 않는다.

성취평가제: 모든 선택과목에 대한 '성취평가제'(절대평가)도 2025년부터 도입된다. 기존에 시험을 본 뒤 1~9등급을 매기던 상대평가와 달리 성취율 90% 이상이면 A, 80% 이상은 B등급을 매기는 식이다.

대입 제도: 고교학점제에 맞춘 대입 제도 개편은 2024년 발표돼 2028년도 입시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기존 오지선다형 수능에 논·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쪽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변화가 큰데... 제도 보완은 어떻게?

1️⃣ 교원 늘릴게

교육부는 2023년부터 적용될 교원수급계획에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수요를 반영할 예정이다. 기존처럼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고려해 교원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학교 현장 수요에 기반을 둘 거란 설명이다.

2️⃣ 전문성 높일게

교육과정 기획을 담당할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도 내년까지 학교당 1명 이상 양성하기로 했다. 올해 1000명 수준인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는 내년엔 16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3️⃣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할 거야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농어촌·소규모 학교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원 추가 배치를 검토한다. 한 교원이 여러 학교를 돌며 수업을 지원하는 순회교사제, 중·고등학교 교원 겸임 제도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 그 외 교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을 통한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지역 내 대학과 연계한 핵심 분야 교과목 개발·운영,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임팩트

교육계에선 화들짝, "졸속 도입"

현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반응.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안을 정해 발표하자 아연실색했다.

턱없이 부족한 선생님: 다양한 선택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원이 필수적이지만 저출생 기조에 맞게 신규 교원 채용을 줄이는 추세다. 교원 수를 충분히 늘리지 않으면 결국 원격 수업 비중이 커져 학업성취도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부족한 인프라: 다양한 선택과목을 만들 수 있는 학교가 아니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농어촌·소규모 학교와 도시 학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거란 비판이 나온다. 다른 학교에 개설된 수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처럼 불편함을 겪을 학생들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학교별로 바뀐 정책에 맞게 얼마나 준비됐느냐에 따라 입시 유불리로 이어질 수 있다.

주체적인 학습이 가능할 학생들

우려를 딛고 제대로 정착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 흥미에 따라 수업 시간표를 설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힘을 키울 수 있으며 학습 동기도 분명해진다. 진로 설계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경영 관련 과목을 수강해 흥미를 느꼈다면 대학 전공을 고를 때 경영학과를 고려할 수 있다. 그간 공교육의 단점이라고 지적된 획일성 및 과도한 경쟁 문제도 완화돼 교실 내 활력이 커진다.

  • 과목 쏠림 예상돼: 선택지가 많아지는 대신 과제가 거의 없는 과목, 선생님이 엄격하지 않은 과목 등 특정 과목으로 학생들이 쏠릴 수 있다. 대학생이 '꿀강'을 선호하듯 최대한 쉽게 등급을 따려는 학생들이 생기는 것.

예상되는 학교 운영 상 혼란

수업 질 하락: 교원 업무 부담은 커지고 수업 질은 떨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개설해야 하는 과목에 비해 교원이 모자라 1명이 여러 과목을 가르치거나, 개설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외부 전문가에게 수업을 맡기는 것도 수업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생에게 선택권만 줬을 뿐 교육 효과는 없는 실패한 정책으로 남을 수 있다.

대폭 추가될 운영 업무: 선택과목 수요 조사, 수강 신청 시스템 안내·관리, 공강 운영 방안 마련, 미이수 제도에 따른 보충 수업 진행 등 바뀐 제도를 이행하기 위해 이전엔 없던 운영 업무가 잔뜩 생긴다.

  • 성적 떨어질 수도: 학교 운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학생들 성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대입 준비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학교 밖 부작용

8학군 부활?: 그동안은 내신평가가 상대평가로 이뤄졌다. 좋은 석차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명문 학교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절대평가로 전환된다면 이와 같은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강남 8학군 등 학교 인프라가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곳을 선호하는 현상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강남 부동산의 강세에 영향을 미친다.

사교육이 파고들어: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내신 대비를 위해 학원, 과외에 의존하는 현상은 줄어들 수 있으나 과도기인 2023~2024년엔 혼란이 예상된다. 바뀐 체제서 수능과 내신을 다 잡기 위한 과목 선택 전략을 제시하는 고가의 컨설팅 업체 등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바뀔 대입, 끼인 애들은...

2023~2024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현 중1·2엔 '교육정책의 실험대상'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고교학점제 적용을 받으면서도 평가 방식은 상대평가 그대로다. 대학 입시도 현행 체제로 유지된다. 최근 수능 정시 비중이 확대된 추세와 맞물려 결국 입시에 유리한 과목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취지에 맞춰 듣고 싶은 과목을 듣는다면 입시와 학점제를 따로 챙겨야 해 공부량이 가중되는 상황. 과연 진로·적성을 고려한 수업 선택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 새로운 수능, 괜찮을까: 논·서술형 문제는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으나 평가 시 혼란이 예상된다. 국가 단위 대규모 시험 평가에 통용될 만한 일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스탯
취지는 공감하나 2025년 도입은 좀 그래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교원: 정부는 공약 이행 성적표에만 집착하고 있다. 2025년 시행도 불안했는데 갑자기 2023년부터 앞당겨 시행한다니. 제도가 무사히 정착하면 좋겠지만 시행 사례를 보면 한 교원이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식이던데? 업무만 늘어나고 수업 질은 떨어지는 거 아닌가. 벌써 걱정돼 막막하다. 혹시 내년에 정부가 바뀌면 추진이 붕 뜨는 거 아닐까.

중1·2 학생: 새롭게 바뀌는 게 많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과목에 쓸 시간을 흥미 있는 과목에 투자할 수 있고, 일찍부터 진로를 준비할 수 있는 건 좋아 보이는데. 또 대학생처럼 직접 수업을 선택한다는 생각에 기대되기도 하지만 결국 수능에 유리한 과목을 골라야 하는 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교육부: 교육의 큰 전환점이 필요할 때라 추진했다. 정부 공약이라 스퍼트를 내기도 했다. 교육과정이 대입 준비에만 치우쳐 진행되지 않도록 입시 제도를 설계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다. 앞으로 3년의 준비 기간 동안 다른 핵심 과제와 함께 체계적으로 준비하면 쏟아지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전반에 찾아올 혁신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고교학점제, 등장한 배경은?

이명박 정부 집권기인 201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핵심 교육 정책은 '고교 다양화 정책'이었다. 학교 선택권을 넓히고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보장하겠단 취지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를 대폭 늘렸다. 그러자 최상위권 학생들은 과학고, 외고 등 특목고로 진학했으며 내신 상위 50% 학생들은 자사고를 택했다.

우수 학생이 빠져나가자 일반고 학습 분위기가 나빠졌단 지적이 나왔다. 일선에선 많은 학생이 무기력한 '잠자는 교실'이 됐다며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졌다. 특목고, 자사고 폐지만으론 부족하고 일반고 시스템을 바꿔 교육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단 얘기도 꾸준히 나왔던 상황. 경직된 학교 교육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교육 다양성을 높일 방안으로 학생에게 과목 선택권을 주자는 대안이 떠올랐다. 여건이 조성되면 사교육이 줄어들고, 맞춤형 교육으로 창의적 인재를 기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모였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난 자유학기제

2016년부터 전면 시행된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 동안 지필고사 없이 토론과 체험 활동, 프로젝트 학습 등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제도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로, 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적성과 꿈을 키울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고입을 위한 '스펙 쌓기'로 변질되진 않을지 우려가 교차했으나 취지대로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큰 도움이 됐단 호평을 받았다. 특히 오로지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게 목적인 입시 위주 교육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분석이었다. 2018년엔 자유학기제를 두 학기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자유학년제'로 확대됐으며, 보통 중1 때 실시하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효과적으로 안착했기에 그 연장선으로 유사 취지의 고교학점제가 추진된 것. 다만 다른 애들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동안 선행학습을 하면 앞서 나갈 수 있단 생각에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난 자유학기제

에프터스콜레는 학생들이 1~2년 동안 학업 부담에서 벗어나 진로 탐색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덴마크의 대표 독립 교육 기관이다. 학생들은 덴마크의 의무 교육 기간인 0학년~9학년 중 8학년이나 9학년을 에프터스콜레에서 보낼 수 있다. 해당 연령대의 4분의 1 정도가 에프터스콜레에 진학한다.

여기선 필수과목인 덴마크어, 영어, 수학, 철학과 더불어 스포츠, 음악, 연기 등 각 학교에 특화된 선택과목을 가르친다. 시사 토론이나 자유롭게 노는 야외 활동도 과목에 속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교육 철학이다. 졸업한 학생들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실제로 진로 방향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정부에선 에프터스콜레 학생들의 생활비, 교육비와 교사 월급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 덴마크의 대학 진학률은 전체 중 40% 정도다. 우리완 다르게 반드시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교육을 시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