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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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2022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현대 들어 많은 기관이 민주주의의 위기 내지 후퇴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미국 비영리기구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자유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 국가 수가 줄었다고 통계자료를 보고했습니다. 매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는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도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사회의 지속가능 거버넌스에 대해 연구하는 비영리재단 배텔스만의 변혁지수(BTI)에서도 2000년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국가가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나타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어떤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을까요?

개요📍

민주주의의 현주소

먼저 지난 화에 이어 현재 민주주의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간략히 짚어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혁명 과정에서 드러나듯 자유의 쟁취 과정에서 확립했습니다. 그 자유의 근거가 되는 게 이성이고요. 인간은 이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누구나 자유롭고 합리적인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해 나타납니다. 보다 정치적 언어로 정리하자면 자유주의는 피치자(시민)의 권리 보호와 국가권력의 부당한 개입 방지를, 민주주의는 인민의 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지향하는 이념이죠.

필요해진 배경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잡아줍니다. 부르주아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대중이 부상함에 따라 기본권과 참정권이 확대되는 형태를 띱니다. 그 결과 혁명 이후 초기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지배와 대중의 정치 참여가 타협된 자유민주주의 형태를 띠죠. 부르주아와 자본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대가로 일차적으로 주어진 게 자유, 그 다음 쟁취한 게 참정권인 셈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위기를 맞습니다. 제국주의적 이권침탈 경쟁이었던 세계대전은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 국수주의, 민족주의를 낳기도 하죠. 이는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이후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대공황이 불러온 경제 위기는 민주주의를 19세기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모습으로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배경은 자본주의입니다. 수정 자본주의죠. 케인스주의에 따라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복지국가가 됩니다. 이때 비로소 자유와 더불어 평등이 민주주의 가치로 강화됩니다. 이후 다시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 복지정책은 축소됩니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를 낳고 민주주의의 경제적 평등을 약화시킵니다.

자유민주주의 → 자유+평등 민주주의 →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복지 축소 → 양극화 및 경제적 평등 약화(오늘날 갈등 상태)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이룬 경제 발전만큼이나 민주주의 역시 단기간 내에 이뤘기에 그 성숙도나 발전이 모자른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민주주의적 기반이 약한 국가들에선 복지국가적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민족주의나 권위주의에 기댄 독재정권이 들어서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강력히 구축된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성장 일변도의 길을 걷느라 평등, 복지 측면이 부족하며 민주주의 역시 민주화 항쟁 등을 통해 급진적으로 발전했고요.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적 가치의 희생을 담보로 성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까지 보수 세력의 향수로도 남아있죠. 이런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한계를 공유함과 동시에 원 플러스 원으로 위와 같은 특수성을 함께 지닌 것이 특징입니다.

검토1️⃣

대표성의 위기

이제 민주주의에 어떤 위기가 도사리는지 볼까요? 이번엔 우리나라 통계 얘길 해볼 텐데요. 2020년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정치 만족도는 평균 3.84점입니다. 정치를 매개하는 정치인, 정당에 대한 만족도는 각각 2.95점과 3.89점이고요. 10점 만점입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도 4.09점으로 직접민주주의나 강한 리더 중심 통치와 비교해 가장 낮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대표성입니다. 인구 증가와 도시 발전으로 사실상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인 오늘날 매우 중요하죠. 그럼에도 정치인이 구성하는 국회 그리고 정당은 매우 낮은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비단 조사 결과에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사태만 봐도 국민의 목소리는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니라 광화문에서 직접 표출됐죠.

이는 선거로 탄생한 정당이나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정책 결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대표성의 위기입니다. 공공의 이익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기에 공공성의 위기기도 하죠. 모두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서로 담합(카르텔 정당)하고 책임을 회피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선거의 한계

일단 투표는 해야 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투표도 안 하면 정치적 의사 표현은 포기한 셈입니다. ‘날 잡아 잡수’란 얘기죠. 그러나 사실 투표와 선거도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보완책과 시민의 정치적 성숙이 요구되는데요. 이와 관련해선 다음 화에서 알아보도록 하고, 여기선 어떤 한계가 있는지 간략히 짚어봅니다.

얘기할 것은 ‘투표의 역설’과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핵심은 선택지가 합리적인 대표성을 띠지 못할 때에도 다수결을 통해 선택될 수 있다는 겁니다. A, B, C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을 때 A가 B보다 좋고 B가 C보다 좋다면 A는 C보다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A와 B가 후보로 있을 때 A라는 선택이 합리적이죠. 이를 이행성(일관성)의 원칙으로 부르는데요. 그러니 현실에선 C가 A보다 좋을 수 있죠. 이재명보단 윤석열이 좋은데 윤석열보다 안철수가 좋을 수 있는 것처럼요.

또한 선거가 반드시 능력을 검증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후보자에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도 않고요. 후보자는 최소한 자신을 알려야 하며, 인지도는 선거에 큰 당락을 좌우합니다. 자신을 알리거나 선거활동을 위해서도 많은 돈이 들죠.

또한 유권자 역시 반드시 가장 능력 있는 이에게 투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선거가 시험이라고 봤을 때, 뭐가 기출문제고 평가기준인지 종잡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선거 역시 유권자에게 공정하게 판단하길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마가 훤칠하니 잘생겼어’ 하고 찍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죠. 투표의 역설에서처럼 ‘누구보단 좋아서’일 수도 있고요. 다만 경험적으로 성숙하길 기대할 수 있을 뿐이죠.

물론 막아야 한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랬다간 민주주의라는 ‘초가삼간’을 태워먹을 수 있습니다. 능력 검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나의 정치적 의사에 대한 위임이라고도 볼 수 있는 투표엔 냉철함과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검토2️⃣

갈등의 양상, 양극화

민주주의는 갈등의 정치입니다. 갈등으로 굴러갑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선 정당에 의해 선택된 ‘갈등’이 공론이자 여론이 됩니다. 정당 또는 정치인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해결하고 싶은 갈등을 담은 상품 꾸러미 구매와도 같죠.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로 지목되는 것은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분열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분배하는 게 정치이고 그 신체가 정치체제라고 봤을 때 곧 현재 사회의 가장 큰 위기로도 볼 수 있죠.

그럼 양극화란 무엇일까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일입니다. 태도나 소속감이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치우쳐 중도적 공간이 희박해지는 일 또는 현상이죠. 그럼 왜 안 될까요? 중도적 공간이 왜 필요할까요? 딱 부러진 게 야무지다고 평가받고 흑백논리가 각광받는 세상이지만, 양극화는 타협이나 합의, 상호존중이나 이해 그리고 관용을 품기 어렵게 합니다. 그러면 규범이나 입법 과정, 사법에 대한 존중이 약화되고 시민은 불만과 분노를 절제 없이 분출하기 쉽습니다. 정치인도 여기에 편승해 포퓰리즘에 치우쳐 대중을 호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를 승패의 구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승자는 패자를 배제하고 패자는 승자에 보복하기 위해 정당성을 부정하고 비민주적 수단을 강구할 수 있죠. 민주주의의 룰 자체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양극화는 시민이 갖는 사회적 신뢰도 훼손합니다. 양극화된 정치인은 자신의 이념으로 시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며, 시민은 지지하는 진영의 정치 논리에 종속되고 갇히고 맙니다. 팩트와 토론 가능한 이슈는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으로 소모되죠. 여기에 언론, SNS, 지식인 집단까지 휘말리면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토론과 숙의는 흔들리고 맙니다.

정치의 양극화는 한층 더 위험합니다. 흔히 극우, 극좌로 불리는 정치 세력은 왜 위험할까요? 좁은 한 편의 입장만 대변하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게 왜 위험할까요? 그 외의 것을 타자화하고 차별하고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파시즘이나 나치즘, 자국민 우선주의 등이 국가적으로 발현된 예라면, 이민자나 인종, 여성, 장애인 혐오 등은 대중에도 만연하는 정치적 양극화입니다. 이는 과거 트럼프의 당선처럼 귄위주의적 스트롱맨 정치를 낳기 쉬울뿐더러 가짜뉴스나 포퓰리즘에 있어서도 좋은 먹잇거리가 되죠.

경제적 불평등은 어떻게 양극화를 낳고 이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선 다음 화에서 이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 다음은 양극화를 낳는 불평등과 오늘날 민주주의의 문제의 대안을 살펴보는 '민주주의의 미래는?'이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뉴스

한국일보

대의민주주의,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서

<게임 오버>, 한스 페터 마르틴 지음, 이지윤 옮김, 한빛비즈, 2020.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장성익·방상호 지음, 풀빛, 2018.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2004.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유규오 지음, 후마니타스, 2016.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주의 역사의 궤적과 현황

아산정책연구원

민주주의 위기, 국제질서 혼란

한국경제신문 생글생글

[Cover Story] 민주주의 한계 드러내는 투표의 역설

SNUAC 다양성+Asia

동아시아의 새로운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의 현황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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