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배구 스타 '학교 폭력'…악습 정화 계기 될까

스포츠계 전반으로 확산, 제도 허점도 있어
4/7/2021
큐레이션 소스
핵심 키워드
에디터의 노트

👀 한눈에 보기

최근 배구계 스타 선수의 학교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타 쌍둥이 자매가 칼을 들고 위협했다는 피해자의 호소로 시작된 사태는 대통령이 엄중 대응을 주문하며 사회적 이슈로 확산됐다. 칼을 들고 위협했다는 증언은 학생 때의 철없는 행동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의 충격을 줬고, 나라 전체에 공분이 커진 상황. 상승세를 탔던 배구의 인기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놨지만 재발의 불씨는 남아있다.

🔥 왜 중요한가?

프로를 목표로 하는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교폭력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특히 스타 선수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시선을 끌었다. 학교폭력은 청소년기의 정서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현 제도는 어떻게 학교폭력을 정의하고 있을까. 일탈은 결국 제도권의 울타리가 부실한 데서 기인한다. 새로 나온 대책은 어떨까. 제도의 현재와 허점을 알아야 제2, 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

큰 그림
청사진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선수단 소속 이다영 선수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특정 선수를 저격하는 듯한 내용을 포스팅했다. 그는 "좀 어리다고 막대하면 돼? 안 돼" "곧 터질꼬야아얌. 내가 다아아아 터뜨릴꼬얌" 등 글을 올렸다. 이후 한 배구 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는 대선배 김연경을 겨냥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 폭로와 사과, 그리고 징계

피해자 '분통': 이다영의 인스타그램을 본 피해자는 분노했다. 자신에게 한 행동은 생각하지 않고 피해자를 자처하는 모습에 분노했다. 그는 지난 2월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중학교 시절 이다영을 비롯해 쌍둥이 언니인 이재영 선수가 함께 흉기로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의 추가 폭로도 나왔다.

쌍둥이 자매 자필 사과: 쌍둥이 자매는 상황이 알려진 날인 10일 각각 자신의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이다영은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앞으로 자숙하고 반성하겠다", 이재영은 "자숙하고 평생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며 사과했다.

코트 못 나서는 쌍둥이: 소속팀 흥국생명은 사안이 알려진 지 닷새가 지난 15일 무기한 출장정지 조치를 내렸다. 대한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 둘은 모두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주전선수였다.

칼 빼든 정부…"특단 노력 기울여야"

그늘 속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런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 — 문재인 대통령

학폭 연루자는 프로 못 뛰어: 문화체육관광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학생선수 시절 징계 이력을 관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학폭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됐고, 프로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은 학교폭력이나 성범죄 등에 연루된 선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면 배제키로 해 결과적으로 프로 진출길이 막힌다.

또한 서울 지역 학교운동부 선수들은 학폭과 관련해 받은 처분에 따라 활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가해 정도가 심해 전학이나 퇴학 같은 강한 처분을 받으면 체육특기자 자격을 박탈키로 했다. 가장 최소한인 서면사과 조치를 받더라도 최소 1달 이상은 학교운동부 활동을 못 한다.

학생선수 인권보호 강화: 문체부는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 일명 고 최숙현 법으로도 스포츠계 인권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던 최숙현 선수가 동료와 지도자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이 19일부터 시행됐다. 배구계 학폭 사태가 불거지기 전 개정된 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시행 시기가 겹쳤다. 해당 법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인권침해나 비리는 즉시 신고해야 함. 신고를 받은 경우 스포츠윤리센터는 곧바로 피해자 보호조치에 나서야 함.
  • 매년 (성)폭력 등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선수, 지도자, 단체 임직원은 매년 1시간 이상의 인권교육을 반드시 이수.
  • 지도자가 선수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부정 비위를 저지른 경우, 기존 최대 1년이던 것에서 기간을 늘려 최대 5년까지 지도자 자격 정지.
  • 선수를 위한 표준계약서가 도입되고, 훈련시설에도 CCTV 설치 가능.
임팩트
학폭 근절 계기, 쌍둥이 법적 처벌은 불가능

학폭 근절 바람: 학생선수의 일탈이라고 보기 힘든 행적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무명도 아닌 스타선수가 학폭을 저지른 것이 알려지자 공분은 더 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엄정 대응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고, 정치권에서도 엄정 대응하고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며 지원사격했다.

들춰지는 다른 행적들: 단순히 쌍둥이만의 문제가 아닌 스포츠계 전반의 문제로 확전됐다. 남자배구에서도 학폭 사실이 확인됐고, 또 다른 폭로가 꼬리를 무는 상태다. 여기에 남자 연예인이 학폭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나왔고, 프로야구 선수의 학폭 의혹도 불거졌다.

제도 개선으로 학폭 감소 가능성↑: 스타선수의 학폭 이슈는 역설적으로 정부가 강한 칼을 빼 들게 만들었다. 국민의 이목이 쏠리자 학폭 이력관리라는 대책을 내놨고, 서울시교육청이 학폭 징계 이력에 따라 선수 활동에 차등을 두기로 한 만큼, 서울 지역 학생선수들은 더욱더 조심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가 이처럼 전반적인 제도 개선에 나선 터라 장기적으로는 학폭 사례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쌍둥이 미래는?

선수 생활 먹구름: 본래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여자배구 인기를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여자 배구선수로는 최초로 승용차 광고 모델이 된 것도 그 때문. 하지만 이들은 이제 선수 생활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법으로 처벌은 힘들다: 그러나 이들 자매는 '여론 재판'을 받고 선수 생활이 중단됐을 뿐 ,법에 따른 형사 처벌은 받지 않을 전망이다.

  • '촉법소년' 적용: 해당 사안은 이들이 중학생 시절인 10여년 전 피해에 대한 것이다. 나이로 치면 만 14세 이하인데, 현 제도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촉법소년'으로 정의한다. 두 선수 모두 중학생 시절에는 촉법소년 신분이었다. 촉법소년은 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같은 보호처분을 받는다.
  • 공소시효도 지나: 성인이 된 지금 처벌하려 해도 공소시효 문제가 남는다. 협박죄의 공소시효는 3년, 폭행죄와 모욕죄는 각각 5년이다. 칼을 들고 괴롭혔으니 특수상해죄(2인 이상이 함께 하거나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쓴 경우)를 적용하더라도 10년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나버렸다.
스탯
선수 자격 정지·국가대표 자격 박탈 인식조사

이번 사안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학폭 가해선수에게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벌백계로 처리해야 한다'라는 응답자가 70.1%로, 청소년 시절의 잘못으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지나치다'고 한 응답자의 비율 23.8%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걱정거리
이해관계

정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제도를 손봤다. 학생선수의 학폭 징계 이력을 보고, 향후 국가대표 선발에도 제한을 둔다. 하지만 학폭이 사회에 만연한 오랜 염증이었음에도, 이목이 쏠린 뒤에야 뒷북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배구계: 당혹스럽다. 쌍둥이 자매는 여자배구 인기를 견인하던 슈퍼스타였다. 배구계는 전반적인 인기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단 두 선수가 소속됐던 흥국생명의 경쟁팀 입장에서는 순위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 속으로는 반색하고 있다.

스포츠팬: 생각보다 만연했던 학폭에 경악했다. 자신이 응원하던 선수가 학생 시절 '폭력배'에 가까웠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남자 선수의 학폭 논란도 함께 불거지며 질릴 대로 질렸다. 이제는 선수를 좋아하려 해도 학폭 전력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재영·이다영: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만큼 해외진출을 타진할 거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배구협회의 국제 이적 규정에는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거나 중대한 피해를 입힌 자는 진출자격이 제한된다는 내용이 있다.

진실의 방
생각보다 정밀한 학폭 징계, 그러나 허점도 있어

사실 학폭에 대한 처분은 생각보다 세밀하게 마련돼 있다. 단순한 친구끼리의 다툼 정도는 학폭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법으로 정한 학폭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학폭에 대한 처분은 교사, 전문가 등이 포함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판단한 뒤에 최종 결정한다. 피해학생과 학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학교가 자체적으로 사안을 종결할 수 있다. 단 자체 종결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아래의 경우에 해당할 때만 가능하다.

  • 1주 미만의 신체·정신상 피해
  •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

징계 처분은 총 9가지로 나뉜다. 이 중 약한 수준인 1~3호 처분을 받은 학생은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정도가 약했고 반성하는 학생에게 낙인을 지우는 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 뭉개면 말짱 도루묵: 단 허점이 있다. 현재 위원회 개최 요건은 피해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요청하거나 학교가 인지했을 때다. 피해자가 용기를 못 내거나 담임 교사 등이 인지하지 못하면 학폭은 그대로 묻힐 수 있다. 배구계에 대입해보면 이제부터는 학폭 징계 사안이 선수 이력으로 관리되므로 선수 생활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학폭을 더 숨길 가능성이 있다.
  • 기준은 뭔데: 징계 판단이 오락가락 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위원회는 심각성이나 지속성, 고의성, 반성·화해 정도 등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할수록 강한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그 점수를 결국 사람이 매기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고의성 여부가 징계 처분에 반영되긴 하지만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다른 점수가 매겨질 수 있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학폭 논란은 과거 프로야구에도 있었다.  2018년 신인 안우진 선수(키움 히어로즈)는 지명 이후 학폭 폭로가 나오자 구단이 50경기 출장정지 제재를 내렸다. 안우진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3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아 대표팀 합류 기회도 잃었다. 또 지난해에는 NC 다이노스가 지명한 김유성 선수의 학폭 사실이 확인되자 지명이 철회되는 '강수'가 내려지기도 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부제: 악동의 발목을 잡았던 고교 시절

미국 프로농구 NBA 스타인 앨런 아이버슨도 폭력으로 커리어가 단절될 위기에 놓였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볼링장에서 백인 소녀에게 의자를 집어던진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이는 대학들이 그의 스카웃을 꺼리는 계기가 됐다.

어머니가 나서 조지타운 대학의 농구팀 감독에게 사정했고, 우여곡절 끝에 아이버슨은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인상과 시즌 MVP를 받을 만큼 좋은 실력에도 감독과의 불화나 돌발행동 등으로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프로 커리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