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여성 생리용품 전면 무상공급

‘생리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최초 정책 시행
에디터의 노트

👀 한눈에 보기

스코틀랜드가 ‘생리 빈곤’(period poverty) 문제 해결을 위해 생리용품을 세계 최초로 전면 무상공급한다. 2018년부터 세계 최초로 중·고·대학교에서 생리용품을 무상제공 해오다 이번에 그 범위를 더 넓힌 것이다.

이번 결정은 생리용품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생리 빈곤’ 문제 해결의 목소리가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스코틀랜드 시민단체 ‘독립을 위한 여성’의 2018년 조사에서는 5명 중 1명은 생리대 대신 낡은 옷이나 신발 깔창, 신문 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선 여성 절반 가까이가 생리 때문에 학교에 결석한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전세계적으로 생리 빈곤의 문제는 악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 왜 중요한가?

최근 각국에서는 여성의 생리를 기본권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넘어 보편 복지의 차원에서 생리대 접근성을 높이려는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잇따른다.

한국은 2004년부터 생리용품에 붙는 부가가치세가 폐지되어 상대적으로 빨리 ‘생활필수품’의 지위를 획득한 편이다. 그러나 생리대 가격은 개당 평균 331원 정도로 OECD 36개국 중 가장 비싸다. 그래서 생리를 하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일명 '탐폰세(tampon tax)'가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지만, 금전적인 부담이 큰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결정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다.

큰 그림

스코틀랜드 의회는 11월 24일 생리대와 탐폰 등 생리용품을 무상제공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전역의 학교 등 공공기관과 약국을 포함한 지정 시설에 생리용품을 배치해 필요한 사람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용자 수에 따라 법 시행에는 연간 870만 파운드(약 128억 6870만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생리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정책은 세계 각국에서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지난 6월, 약 19억원을 들여 전국 학교에서 여성 청소년에게 무료로 생리용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영국도 작년부터 학교에서 생리용품을 무상제공하고 있고, 작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선 생리용품에 붙는 판매세인 ‘탐폰세’(tampon tax)를 없애자는 법안이 주 하원에서 통과됐다.

코로나 사태로 심해진 생리 빈곤

특히 코로나가 유행하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올해 초 설문조사에 따르면 14~21세 사이 스코틀랜드 여성의 3분의 1이 ‘지역 봉쇄’ 기간 동안 생리용품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청소년 센터와 학교를 포함한 일부 기관에서 생리용품을 무상 제공하지만, 이런 기관이 봉쇄기간에 문을 닫은 것이다.

“생리는 코로나 유행 동안 멈추지 않기 때문에 (생리 빈곤 문제 해결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모니카 레넌(Monica Lennon) 노동당 의원
청사진
한국의 생리용품 정책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 2004년부터 생리용품에 붙는 부가가치세가 폐지된 국가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생활필수품’의 지위를 획득한 편이다.

그럼에도 생리대에 대한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6년 ‘깔창 생리대’ 논란은 한국에서 관련 입법이 정비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깔창을 사용한다는 청소년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국회는 2017년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청소년에게 필수 보건위생용품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생리대 지원을 받는 대상은 기초생활수급, 법정 차상위, 한부모가족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바우처 제도’ 도입으로 여성들이 각자에게 필요한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생리대 개당 평균 가격 (원)

그러나 저소득층 복지를 넘어 보편적인 인권 차원에서 생리대 접근성을 늘려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OCED 최고 수준(개당 평균가격 331원)인 생리대 가격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안전하게 생리할’ 여성들의 권리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생리용품 업계

현재 한국의 생리용품 업계는 상위 3개 업체가 시장의 75%를 점유하는 독과점 시장이다. 이중 업계 점유율 선두(47%)인 유한킴벌리는 2010년부터 7년간 생리대 가격을 140회 넘게 인상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에도 올랐다. 공정위는 1년반 간의 조사 끝에 2017년 “유한킴벌리의 가격인상을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리대 가격 인상폭(19.7%)이 재료비 상승률(12%)이나 원가 상승률(25.8%)에 비해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생활필수품인 생리대의 가격 안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특히 ‘독성 생리대’ 파문은 저소득층이 아닌 여성들도 안전하게 생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생리용품 업계는 화학물질 첨가를 최소화한 프리미엄 생리대를 속속 내놓고 있지만, 개당 500원~800원, 월 3~4만원에 달하는 구입비용은 저소득층 뿐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여성에게도 부담이다.

“현재는 안전하게 생리를 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여성 개인에게 오롯이 전가되고 있다. 정부가 생리대의 제조·허가 단계에서부터 안전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편, 생리대의 가격 인상 억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임팩트
스탯
숫자로 보는 이야기

스코틀랜드 시민단체 ‘독립을 위한 여성’이 2018년 여성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생리 빈곤이 일부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숫자로 보여준다.

  • 5명 중 1명은 재정적인 이유로 생리용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생리 빈곤층
  • 10명 중 1명은 생리용품을 살 돈으로 먹거리를 사야했던 적이 있다
  • 대부분 공중화장실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로 생리대를 대체
  • 헝겊, 티셔츠, 양말은 물론, 신문지를 사용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생리 빈곤은 당사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 22%는 원하는 만큼 생리대를 교체할 수 없었다
  • 11%는 요도 감염이나 질염을 앓은 적이 있었다
  • 생리용품을 구하지 못해 학교나 직장을 빠지는 등의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 경우도 흔함

이렇듯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빈곤층에게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경제 활동을 하는데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진실의 방: 팩트 체크
말말말
"스코틀랜드는 생리 때 부적합한 용품을 사용하는 수모를 겪거나, 자녀 생리대 구입비용에 부담을 느끼거나, 학교를 빠지는 일은 없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줄 것"
에일린 캠벨 스코틀랜드 공중보건장관
“여성과 소녀들을 위해 중요한 정책이자 획기적인 법안에 투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다른 나라의 '생리 빈곤' 문제

개발도상국일수록 어려운 생리 빈곤 문제

생리 경험의 불평등은 국가와 국가 간에도 존재한다.

“생리용품에 대한 접근은 그저 요인 중 하나”라며 “생리할 권리는 깨끗한 물과 생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의료 지원 등이 종합적으로 갖춰질 때만 달성될 수 있다”
줄리타 오나반조 유엔인구기금(UNPFA) 동남아프리카 지역담당자

개발도상국일수록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케냐가 대표적인 예다.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은 2017년 “각 주는 학교에 등록된 모든 여학생들에게 충분한 양의 품질 좋은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해야 한다”는 교육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여자 고등학생들이 생리때문에 4년간 평균 156일을 결석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는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 각국과 비교해도 선도적인 조치였다. 케냐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폐지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책의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농촌지역 학교에서 생리용품을 교체할 수 있는 개별 공간이 확보된 곳은 32%뿐이었다. 만성적인 가뭄 탓에 흐르는 물이 나오지 않는 학교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생리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들 조차 생리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가정이나 학교가 아닌 또래 친구들로부터 생리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그중에는 “생리 중에 성관계를 할 때만 임신이 가능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탐폰세(tampon tax)?

탐폰세는 생리용품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말하며, 한국의 경우에는 2004년에 폐지되었지만 아직 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2018년에 생리대에 부과됐던 12%의 재화 및 서비스세(GST)를 폐지했다. “생리대는 사치품 범주에 포함된다”며 과세 결정이 내려진 후, 시민 40만명이 대대적인 청원운동을 벌인 결과였다. 이외에도 캐나다, 독일, 르완다, 호주, 아일랜드 등의 국가들도 모두 최근 5년간 탐폰세를 폐지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3년간 뉴욕, 일리노이, 플로리다, 코네티컷주에서 탐폰세 폐지를 결정했다. 물론 미국 전체로 보면 탐폰세를 유지하는 주(36곳)가 대다수지만, 비아그라, 발모제조차 생활필수품으로 분류돼 면세인 상황에서 “왜 생리대만 예외냐”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