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독 콧대 높은 명품들

가격 인상에 더 뜨거워진 구매 열기
에디터의 노트

여자라면 중요한 자리에 들고 나갈 명품백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첫인상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아니, 사고 싶어도 나날이 가격이 치솟아 부담인데 어떻게 사죠? 그런데 새벽같이 백화점 앞으로 달려가 1000만원이 넘는 샤넬백을 사는 이가 많은 걸 보면 경제 위기라는 건 다 거짓말 같습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는 게 전혀 실감 나지 않는 한국인의 명품 사랑 이야기.

👀 한눈에 보기

  •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인기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이 퍼지자 매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 서 기다리는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다른 브랜드의 제품 가격도 고공행진 하는 추세다.
  • 배짱 영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으나 소비자들의 명품 사랑은 여전하다.

🔥 왜 중요한가?

샤넬 호구?

샤넬 가격 인상은 올해만 벌써 3번째다. 유독 한국에서 인상 주기가 짧고 가격이 비싸서 한국 소비자는 '샤넬 호구'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도 관대해

다른 브랜드들도 앞다퉈 가격을 올렸으나 소비자들은 관대한 모습이다. 치솟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명품 소비는 활발하다. 수요층이 두터워 별 타격을 입지 않는다.

명품 열풍이 낳은 변화

부를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소비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됐다. 명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도 늘었다.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서 또 어떤 변화들이 이어질까.

큰 그림
청사진

코로나19에도 높은 콧대

3대 명품(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모두 가격이 크게 치솟고 있다. 루이비통은 5~12%가량 인상률을 적용해 올해 4번이나 가격을 올렸다. 에르메스 역시 올해 2번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특히 샤넬은 지난달 '역대급 가격 인상 소문'이 돌았다. 올해 이미 2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던 상황. 이번엔 샤넬백 하나에 1000만원을 가뿐히 넘어설 거란 얘기가 나왔다. 소문은 사실이 됐다. 대표적인 인기 상품인 '클래식 플랩 백 미디움'은 이번 달 864만원에서 971만원으로, '클래식 플랩 백 라지'는 942만원에서 1049만원으로 100만원 넘게 뛰었다.

여전히 뜨거운 열기

가격이 올라도 잘 팔린다. 샤넬의 인기가 가장 뜨겁다. 가격 인상 소문이 퍼지자 영업 전부터 기다리다 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간다는 오픈런 열풍이 불 정도. 백화점 앞 200~300명의 줄이 이어졌다. 줄 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생을 쓰기도 했다.

  • 사랑받는 명품 기업, ESG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은 모두 한국에서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최근 ESG가 부각되자 명품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막대한 수익에 비해 세 브랜드 모두 기부에는 인색한 모양새다. 국내 기부금으로 에르메스는 3억원, 샤넬은 6억원 정도를 지출했다. 루이비통은 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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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 영업, 너무한 거 아냐?

특히 샤넬이 심해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 인기 아이돌을 내세운 마케팅으로 여성들의 워너비 브랜드가 된 샤넬이 특히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비자들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제품에서 하자를 발견해도 AS를 받으려면 매장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해서 고객 불만이 터졌다. 또 에르메스와 루이비통과 달리 샤넬 가방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살 수 있다. 매장 앞 긴 줄을 선 소비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은 글로벌 호구?

다른 브랜드들도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인기가 많은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의 '갤러리아 사피아노' 가죽백은 전 세계 중 한국에서 약 357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생 로랑의 '삭드 주르 백'도 한국에서 약 432만원으로 전 세계 최고가다.

임팩트

배짱 영업은 계속될 듯

명품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추세는 계속될 거란 전망이다. 명품 업계에선 다른 브랜드보다 가격이 싸면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경기가 어려워도 명품 시장은 호황이라는 게 이번에 샤넬 오픈런 열풍으로 더욱 입증된 셈이다.

계속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이자 일찍 사는 게 돈 버는 거라는 인식이 퍼졌다.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혀 휴가 비용이 굳자 명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가 늘어나기도 했다. 살 사람은 계속 사니 굳이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거나 서비스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

커지는 리셀 시장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플렉스'(Flex) 문화와 더불어 '리셀'(Resell)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리셀은 출시된 상품을 발 빠르게 차지한 뒤 시간이 지나 더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을 말한다. 나날이 가격이 치솟는 명품을 리셀하는 '명품테크'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중고명품 위탁·매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인기 사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진위를 가리는 명품 감정사도 각광받을 수 있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해외 직구 사이트도 주목받을 것이다.

  • 리셀의 경우 세금은?: 일시적으로 본인의 중고 상품을 판매하는 거라면 상관없으나 반복적인 영리 추구 행위라면 세금을 내야 한다. 현재는 판매자가 자진 신고를 하지 않아 탈세가 벌어지는 경우도 잦다. 향후 세금 납부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론 명품에 대한 반감 ↑

오늘날 명품은 MZ세대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의 '인싸템'처럼 여겨져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MZ세대는 동시에 공정성과 합리성에 민감하단 특징이 있다. 지금처럼 가격 인상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행보가 이어진다면 반감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스탯
코로나19에도 뜨거운 명품 사랑

지난해 3대 명품 브랜드의 영업이익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샤넬 매출은 전년보다 13% 감소했다. 루이비통과 에르메스에 비해 면세 매출 비중이 큰 영향으로 보인다. 면세점이 개점 휴업 상태였던 걸 고려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한국 시장에선 코로나19 시기에도 실적 호조를 보였던 상황. 올해도 명품을 향한 열기가 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잦은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샤넬: 우린 조화로운 가격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왜? 국가 간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제작비와 원재료가 변화, 환율 변동까지 모두 고려한다. 유로화 기준으로 모든 국가의 제품 가격 차이가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하고 있다.

소비자: 자꾸만 가격을 올리는 명품에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열광하는 게 이상하다. 뭐, 요즘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나를 위해 이 정도 선물은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 비싼 명품을 척척 사는 사람들을 보면 빈부격차가 느껴져 속상하다.

명품 업계: 명품은 사치가 아니라 가치다. 명품의 가치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일궈낸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까지 모두 품고 있는 것. 명품을 착용하는 건 곧 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주기에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즉 비싸도 사는 게 아니라 비싸서 사는 것이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명품, 가격이 올랐는데 왜 이렇게 잘 팔릴까?

1️⃣ 비쌀수록 잘 팔려: 가격이 오르면 역설적으로 구매 욕구가 높아진다는 베블런 효과의 위력이다. 비싼 가격이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수단이 된 셈. 남과 다르고 싶은 사람들의 차별화 욕구를 충족시킨다.

2️⃣ 내가 행복하다는데: MZ세대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큰 고민 없이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워낙 집값이 비싸고 경제성장률이 낮으니 미래를 위해 절약하기보단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3️⃣ SNS를 보다 보니: 파급력이 큰 SNS를 통해 비싼 명품을 쉽게 접할 수 있어 더욱 소비가 확산된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오픈런'을 검색하면 1만5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명품을 힘들게 쟁취하는 모습은 제품에 관심 있던 소비자를 초조하게 만들어 소비 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명품 업체 잡으려 발 동동 구르던 면세점들

2015년 무렵, 명품 업체들은 수많은 면세점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엔 명품을 쓸어가던 요우커(遊客, 중국인 관광객)가 넘쳤던 상황. 이들을 잡기 위해 면세점들은 제각기 명품 브랜드 유치전을 벌였다.

연이은 러브콜에 명품 업체들의 콧대는 나날이 높아졌고 면세점들은 '을'이 되기 일쑤였다. 급할 게 없는 업체들은 낮은 수수료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며 뜸을 들이기도 했다. 당시 면세 업계에선 이를 두고 '갑질'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면세점의 핵심 소비자가 요우커였고, 그들이 열광하는 만큼 명품 산업이 계속해서 성장할 거라고 봤기에 초래된 갈등이었다. 정작 현재는 코로나19로 요우커를 포함한 모든 해외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한국과 중국에서 특히 ↑

가방인 '2.55 플랩 백', '보이 샤넬 플랩 백'과 신발인 '슬링백 미들힐'을 대상으로 인상폭을 조사한 결과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독 한국과 중국의 인상률이 특히 높다. 실제로 중국도 한국처럼 코로나19 이후에도 명품 수요가 줄지 않았다. 일각에선 브랜드 입장에서 다루기 쉬운 고객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