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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표현 모욕죄 아닌 세상...언론생태계 대해부

무한경쟁이 낳은 부작용...과도한 비판도 있어
에디터의 노트

👀 한눈에 보기

  •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달아 재판에 갔던 누리꾼에게 대법원이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 모욕죄 성립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 언론계에서는 자성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과 너무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 독자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등 현재도 수준 이하의 기사가 계속해서 나온다.
  • 기레기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 왜 중요한가?

'쓰레기'에 비유했지만 괜찮아: 기레기는 '기자+쓰레기'의 합성어다. 그만큼 기자들에 대한 불만이 큰 시대다. 이번 사안은 의견개진 차원이라면 기레기라는 표현이 괜찮다고 법원이 확인 도장을 찍어준 셈이 됐다.

늘어난 뉴스 소비와 비례한 비판: 굳이 신문을 사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기사를 접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비난하고 보는 악성 누리꾼도 그만큼 많아졌다.

무한 경쟁이 낳은 수준 이하 기사: 클릭 경쟁에 빠진 일부 언론사가 수준 이하의 기사를 내놓는 것도 사실이다. 눈에 띄기 위해 내용과 관계없는 제목을 달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비판이나 칭찬을 하는 식이다.

언론생태계가 문제 낳았다: 오늘날 생태계를 꿰뚫어 봐야 어떤 기자가 정말 기레기일지 '기느님'일지, 독자의 지적이 모욕인지 합리적 비판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언론사의 생태계와 독자들의 인식 변화, 뉴스 생산 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큰 그림
청사진

대법원 "의견 밝히는 차원이라 괜찮아"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달아도 해당 기자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지난달 25일 나왔다.

  • A씨는 2016년 2월 한 자동차 전문지 기자의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댓글을 달았다. A씨는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 유죄 판결이 나왔던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기레기'가 모욕적 표현이란 점은 인정하면서도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해 내려진 의견의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은 씨앗

과거와 다른 언론의 위상

언론사는 크게 신문사와 방송사, 통신사 등이 있다. 특히 신문사는 언론의 대명사로 꼽힌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으로 세상을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신문사 설립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다.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등 지금 메이저 언론사로 불리는 곳들이 생긴 것도 이즈음이다.
  •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인터넷 신문사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등장한 SNS나 뉴미디어도 언론의 파이를 잡아먹으면서 영향력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클릭 경쟁이 낳은 수준 미달 기사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며 신문이 아닌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를 보는 문화가 뿌리내렸다. 언론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 경쟁에 나섰다. 기레기의 씨앗을 낳은 것이 정확히 이때다.

  • 포털 뉴스 섹션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포털뿐 아니라 언론사 홈페이지 PV(Page View, 페이지뷰) 수도 늘어난다. PV는 사람을 끌어모았다는 근거가 돼 광고유치에 쓰인다. 언론사 수익 대부분은 광고에서 나온다. 광고국은 PV를 통해 광고를 유치하고, 광고주도 PV가 높을수록 광고비를 비싸게 책정한다.
  • 수준 높은 기사로 독자를 끌어모으던 게 과거의 문화였다. 현재는 언론사 외에도 다른 뉴미디어가 많아 광고가 분산된다. 언론사는 정부나 기업을 무리하게 비판하거나 과도하게 찬양하는 기사를 써서 광고를 따오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어졌다.
포털사이트 뉴스 섹션은 과도한 클릭 경쟁을 유도해 팩트는 약하고 자극이 강한 뉴스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기레기가 흔한 표현으로 자리 잡은 결정적인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다.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사고였지만 사실 확인이 안 되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보도가 쏟아졌다.

  • 정부의 잘못된 발표를 그대로 받아적은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가 대표적이다. 일부 기자들은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부모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학교에 찾아가 사물함을 뒤지거나 보험금을 계산했다. 기레기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기사가 우후죽순으로 나왔고, 더 나아가 욕설을 섞은 '기발놈', 구더기에 빗댄 '기더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임팩트
자성 목소리 나오지만 여전한 수준 미달 기사

언론계 '반성하자 VS 그래도 너무해'

쓰라림 잊지 말자
혐오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공동체의 신망조차 얻지 못한 기자들이 무슨 염치로 좋은 저널리즘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기자협회보

이번 대법원 판단에 대해 현직 기자들의 모임인 기자협회는 협회보를 통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해도 너무하네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kimchi' 아래 신조어로 'kireki'가 등재될지 모를 일. — 중앙일보

하지만 너무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K-악플'의 쾌거라는 내용의 비판 칼럼을 냈다. 칼럼은 '내 생각과 틀린 것=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정의내리는 순도 100% 단호함이 존경스럽다며 심한 악플을 다는 일부 누리꾼들의 행동을 지적했다.

취재 방식 변하나

언론은 '알 권리' 충족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로부터 취재 훈련을 받아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기자라는 이름으로 정부나 기업의 정보를 비교적 자유롭게 접할 수 있어서다.

탐사보도 느나

기레기라는 표현이 담긴 댓글들을 보면 '이런 거 쓸 시간에 발로 뛰라'는 주문이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차별화된 보도를 위해 탐사보도팀을 꾸리는 언론사가 많아지는 추세다. 이번 법원 판단까지 나오며 언론사들은 더 깊은 내용을 담은 탐사보도에 힘을 기울이며 명예회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안전하게 쓰자

기자는 사실 속기사와는 다르다. 발언이나 사실을 두고 배경이 된 사안이나 이유를 세련되게 담는 건 기자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발언을 그대로 따온 '따옴표 저널리즘' 기사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기사에 무턱대고 기레기라고 지적하곤 한다. 아예 안전하게 양쪽 의견을 골고루 담는 '기계적 중립' 기사가 늘어날 수도 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

지난 2일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이 마트에서 소주를 박스째로 샀다는 기사가 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식을 그대로 받아 쓴 기사다. 하지만 조두순과 전혀 관계없는 노부부였다.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기사가 나왔다. 자성은 온데간데 없고 클릭 경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대안에 눈 돌리는 독자들

기성 언론의 신뢰가 낮아진 만큼 '뉴미디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 차라리 콘텐츠 형태라도 신선하거나 빠른 뉴스보다는 깊은 시각의 콘텐츠가 낫다는 것이다. 뉴스 배경을 촘촘히 알 수 있는 큐레이션 서비스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생중계 영상 매체, 르포 매체 등 대안 미디어로 눈을 돌리는 독자가 늘어날 수 있다.

스탯
네이버에서 많이 읽힌 언론사 어디?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1월부터 10월19일까지 네이버 '많이 본 뉴스' 내 언론사 순위를 정리한 결과다.  네이버는 인기 많은 뉴스에만 몰리는 문제를 줄이고 다양한 뉴스를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많이 본 뉴스 제도를 폐지한 상태다.

걱정거리
이해관계

언론사: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더 정확히 확인하고 쓴다든가, 충돌되는 주장이라면 더 세련되게 담는 등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그런데 오늘도 경쟁사는 제목 장사로 PV를 올렸다. 마냥 '장인정신'만 추구할 수는 없다.

독자: 기자들이 펜의 무게를 알았으면 좋겠다. 좀 더 깊은 기사를 보고 싶다. 색다른 시각이나 충실한 사실 보도라면 돈을 주고라도 보고 싶다.

비판적인 독자: 잠깐… 오늘도 내가 싫어하는 OO당 기사를 실었네? 이 기레기들 여전하구나.

기자: 매일매일 열심히 하는 데 힘이 빠진다. 욕을 먹더라도 쓸 기사는 써야 한다. 근데 오늘도 데스크는 PV로 나를 줄세운다. 제목도 내가 처음 단 것과 다르다. 회사 입장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진실의 방
클릭이 곧 기자의 가치가 된 현실

기자들이라고 기레기가 되고 싶을까. 문제는 시스템이다. 어떤 신문사는 인트라넷에 그날의 PV 순위를 공개하고 기자들을 줄 세운다. 팀 단체채팅방에 네이버 PV를 공개하고 분발을 촉구하는 일은 일상이다. 기자들은 자연스레 품이 많이 드는 기사보다는 '클릭 많이 뽑히는' 기사만 추구하게 된다. 연봉협상에서는 이 PV를 정량지표로 두고, 높으면 높을수록 회사에 기여했다며 좋은 평가를 받는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더 심한 기레기는 예전에 더 많았을지 모른다. 세상을 보는 채널이 언론사로 한정돼 그만큼 기사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맘만 먹으면 더 악독한 기레기가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1980년대 한 기자는 "고칠 수도 없는 신문에 이름 박아드릴까요?"라며 협박(?)을 했다는 일화까지 있다. '비리 기업이나 비리 인사로 낙인을 찍어줄 테니 고개를 숙이라'는 식이다. 명절 때면 '잘 봐달라'며 보내온 선물들이 집 앞에 산처럼 쌓여있었다는 소리도 전설처럼 들려온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미국에는 존경받는 언론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성공적으로 수익모델을 창출해 낸 매체로 꼽힌다. 지난해 공격적인 인력 확보와 심층적인 코로나19 보도로 2분기 유료 신규 구독자가 60만명 넘게 늘었다. 일러스트로 이해를 돕는 과학 심층보도나 출입처 칸막이를 의식하지 않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공동취재는 뉴욕타임스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