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1901년 사이에 중국 민중들의 반외세 운동
아편전쟁 이후 서양 세력의 침략으로 청 왕조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내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외세의 침략으로 행정은 마비되었죠. 그리고 그 피해는 민중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일부 서양인들은 일반 민중들을 무참히 학살하거나, 그들의 문화를 무시한 채 강제로 개종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쳐 싸우기로 합니다. 산둥 반도를 근거로 한 백련교도를 중심으로 '의화단'을 결성한 것이죠.
의화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부청멸양'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반크리스트교,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을 습격하고 그들이 세운 철도, 전신 등을 파괴하면서, 그 세력을 점점 더 크게 확장시켜갔습니다.
종이로 된 부적을 몸에 붙이고 거칠게 돌진하는 등 필사적인 모습을 보였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의화단 운동이 거세지자 영국, 일본 등은 연합군을 조직하고 의화단과 맞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조직적인 군대를 갖춘 연합군이 대승을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1901년 의화단 운동 진압에는 성공하지만, 청 왕조는 연합군과 신축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조약의 결과로 열강에 많은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외국 군대가 베이징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마치 오이가 쪼개진 듯한 모양이라고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청나라는 매우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민중들은 물론, 당대 지배층이었던 신사층 또한 이러한 무기력해진 청 왕조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