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개최된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을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 아래에 둘 것을 제안한 사건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파리 강화 회의가 개최되어 이후 세계의 질서를 논의하기 위한 장이 열렸어요.
당시 안창호가 이끄는 대한인국민회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이승만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었어요.
이승만은 당시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발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한국)을 국제 연맹의 위임통치 아래에 둘 것을 제안하는 청원서를 보냈어요.
이승만 외에도 정한경, 김규식 등 온건파 독립운동가들 역시 청원서를 보냈다고 알려져 있죠.
훗날 이 사실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에게 알려지면서 크게 분노를 사게 되었어요.
특히, 1910년대 중반 하와이에서의 독립운동을 기점으로 이승만의 외교독립론, 실력양성론에 대해 비판했던 박용만 등의 반대가 매우 거셌죠.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 고통받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이것이 일제의 식민지 상태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제안서에서 이승만은 "…… 조선을 해방해 국제 연맹의 우임 통치 아래에 두는 조처를 할 수 있도록 …… 평화 회의 석상에서 지지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바입니다……" 이라고 쓰고 있었어요.
제안서에는 장래에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다는 조건이라는 단서를 달려 있긴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단체 간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어요.
결국,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에서 탄핵되는 주요 이유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