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고자 강화도를 공격한 사건
1800년대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양의 여러 나라가 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1842년 영국은 청나라와 아편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교류를 시작했고, 1854년 미국도 일본을 위협하여 조약을 체결하였어요.
조선도 프랑스 선교사의 활동으로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고, 서양 물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흥선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금지했어요.
1866년 병인년에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는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이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 군함을 격퇴한 병인양요가 있었어요.
프랑스 군대가 물러난 뒤 조선에 문을 두드린 나라는 미국이었어요.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 영해(바다에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 다른 나라는 허락 없이 침입할 수 없음)인 대동강을 불법으로 침입하여 교류할 것을 강제로 요구했어요.
이에 평양의 관리와 백성들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어요. 미국은 조선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조약을 맺자고 강요했지만, 흥선 대원군은 이를 거부했어요.
이에 미국은 4년 뒤, 1871년 군함을 앞세워 조선의 강화도에 침입했어요. 신미년에 서양이 일으킨 난리(소요)라는 뜻에 ‘신미양요’라고 합니다.
미군은 강화도의 초지진을 함락시키고, 광성진을 공격하였지만, 어재연이 이끄는 수비대는 끝까지 맞서 싸웠어요.
결국 어재연이 전사하고, 광성진은 점령당했지만, 조선의 거센 저항에 미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흥선 대원군은 조선 각지에 서양과의 교류는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비석, 척화비를 세워 나라 안팎에 알리게 됩니다.
신미양요는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게 된 결정적인 사건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재연의 깃발인 수자기(장수 수, 帥 글자가 써진 깃발)를 미군이 가져가며 현재까지 미국이 소유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대여형식으로 몇 년에 걸쳐 빌려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