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 장려 운동

조선 사람 조선 것, 타협적 민족주의 운동의 한계

사전적 정의

1920년대에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항거하여 벌였던 범국민적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

쉬운 설명

POINT 1📌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군인을 교육하는 헌병 대신 경찰이 치안에 대한 책임을 맡았으며, 잡지나 신문을 발행할 수 있으며, 단체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이에 나라 안의 민족주의자들은 일본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일본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실력을 발전시키자는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POINT 2📌

1920년대에 들어가면서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실력 양성 운동이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교육을 통해 국민을 계몽시키는 운동입니다. 이 중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기업을 키워 경제적 자립을 달성하자는 물산 장려 운동이 있었습니다.

1923년 면직물(옷감)과 주류를 제외한 일본의 모든 상품의 관세(외국 물품에 부과하는 조세)가 면제되었습니다. 이에 일본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자국에서 생산된 물산과 토산을 사용하여 자급자족을 이루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물산 장려 운동을 주도한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연회를 열었고, 지식인, 청년, 학생, 부녀자 등 다양한 계층들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POINT 3📌

하지만 이를 두고 사회주의자(노동자, 농민 입장)는 일본에 대한 노동자로서는 무명과 베옷을 입고 본래 토산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양복을 입는 중산 계급을 위한 운동이라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일제는 한국인의 독자적인 산업 발전을 탄압함으로써 이를 통해 민족주의 계열을 분열시키고자 하였습니다.

POINT 4📌

물산 장려 운동은 우리의 산업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 교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제와 타협해야 한다는 뜻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기도 합니다. 일제가 실시한 문화통치를 도와준 셈인 것이죠. 물산 장려 운동의 특징과 한계를 잘 정리해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