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 농민 봉기

삼정의 문란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최후의 선택

사전적 정의

1862년(철종 13) 삼남 약 71개 지역에서 삼정의 문란에 반발하여 일어난 농민항쟁

쉬운 설명

POINT 1📌

조선 후기, 정조 이후 어린 순조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외척 가문에 의해 정치가 운영되는 세도 정치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왕의 권력이 약해졌습니다. 왕의 외척 가문은 중요 기구였던 비변사를 장악하고, 나라에 내는 세금도 함부로 관리했습니다.

POINT 2📌

나라에 내는 세금을 삼정이라고 합니다. 삼정은 전정, 군정, 환곡의 3가지 세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정은 토지에 내는 세금, 군정은 군역(군사로 나라를 지키는 의무)을 대신 수행하면서 내는 세금, 환곡은 곡식을 빌렸다가 추수기에 갚는 것이었습니다.

세도 정치 시기에는 나라에서 삼정을 제대로 걷지 않고,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걷어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특히 각 지방의 행정을 담당했던 수령과 향리의 수탈이 심해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도적이 되거나 떠돌아다니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편, 18~19세기 들어 천주교의 도입동학의 유행으로 하늘 아래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1811년에는 평안도 지역에서 차별 문제로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 많은 농민들이 참여하기도 했죠.

POINT 3📌

1862년에는 경상도 우병사인 백낙신이 환곡의 부족한 양을 채우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진주 지역의 몰락 양반인 유계춘을 중심으로 민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를 임술년에 일어난 백성(농민)들의 반란이라는 의미에서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합니다.

당시 왕이었던 철종은 임술 농민 봉기의 원인이 된 삼정의 문란을 개혁하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삼정이정청은 지방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세금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POINT 4📌

1811년의 홍경래 난은 지역 차별 문제로, 임술 농민 봉기는 삼정의 문란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두 민란을 함께 비교해서 기억해 두세요.

특히 임술 농민 봉기는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정부에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개혁하였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