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의 제7대 황제
효문제는 북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업적으로는 '한화 정책'을 꼽을 수 있어요.
한화 정책이란, 선비족의 기풍과 한족의 기풍을 합치려는 것을 말해요.
한화 정책의 하나로 효문제는 수도를 선비족의 기반이었던 평성에서 낙양으로 옮기는 한편 선비족과 한족 간의 결혼을 장려했어요. 심지어는, 선비족 고유어, 고유 풍속을 금지하기도 했죠.
그가 이러한 정책을 펼친 데에는 황제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컸어요.
당시 건국과 함께 선비족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자리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이 글을 몰랐던 시대라서 이전의 한족 왕조들처럼 체계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란 너무나 어려웠죠.
더욱이, 오랜 기간 유목 생활 만을 해왔기 때문에 농경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해 한족과의 마찰 역시 있었다고 해요.
선비족 출신이었던 효문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한족에게 동화 되어야 했다고 여겼던 것이죠.
한화 정책에 힘입어 북위는 유목 민족인 5호가 세운 나라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나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화 정책을 두고 지배층의 분열이 심해지기에 이르렀고 결국 효문제가 사망한 다음 북위는 동위와 사위로 분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