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신정

서로의 목적이 다른 개혁

사전적 정의

1900년도에 단행한 청 왕조의 마지막 개혁

쉬운 설명

POINT 1📌

청 왕조의 마지막 개혁으로 알려져 있는 광서신정에 대해 알아볼까요?

20세기 초 청 왕조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의화단 운동 이후 맺은 신축 조약(베이징 조약)에 의해 외국군의 베이징 주둔이 허용되었고, 제국주의 열강에게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했죠.

때마침, 의화단 운동을 피해 시안 지방으로 도망갔던 제11대 황제 광서제와 그의 모친이었던 서태후가 다시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들 보수 세력은 황실의 권위가 한없이 추락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고, 광서신정이라는 이름의 개혁안을 추진하게 됩니다.

POINT 2📌

광서신정 당시 청 왕조는 근대적 관제 (지방의회격인 ‘자의국’, 중앙의회격인 ‘자정원’) 설치, 신군 창설, 과거제 폐지, 신식 학교 설립 (학제 도입), 상회 설립 등과 같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근대화 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1908년에는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삼권 분립의 원칙이나, 언론 / 결사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흠정 헌법 대강>을 반포하기도 했죠.

POINT 3📌

하지만, 광서신정은 이내 당대 지배층이었던 신사층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13명의 내각 위원 중 과반이 넘는 8명을 황족 출신으로 등용하는 등 여전히 황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죠. 이제까지 청 정부를 지지하며 입헌 운동을 전개해 왔던 신사층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죠.

또한, 국가 재정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서 민중들의 많은 불만을 사기도 했죠.

결국 1908년 말 광서제에 이어 서태후까지 사망하면서 개혁을 이끌어갈 주체가 사라지게 되면서 광서신정은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후 1911년 쑨원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세력이 신해혁명을 일으키면서 청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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