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의 정치제도를 다방면으로 개혁하고자 한 운동
변법자강 운동은 1894년 양무운동의 한계를 느낀 뒤 실시한 개혁입니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청 왕조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동아시아의 패권은 더 이상 청 왕조가 아닌, 일본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죠.
위기의식을 느낀 청 나라는 양무운동의 기술만을 개혁하는 것이 아닌 의식 또한 개혁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당시 청 왕조의 황제였던 광서제는 캉유웨이의 상소문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하게 됩니다.
캉유웨이는 기존의 양무운동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뿌리깊게 박혀있던 제도를 개혁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수천년간 실시되어온 과거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사서오경을 바탕으로 한 전통 교육 방식 역시 새롭게 개편하였죠.
그 과정에서, 캉유웨이는 황제의 권력에도 손을 대게 되는데요. 황제의 권력을 법으로 규정하여 올바르게 통치하도록 유도하는 ‘입헌군주정’을 주장한 것이었죠.
이 뿐만 아니라 캉유웨이는 상업, 행정 등 다방면에 걸쳐 청 왕조의 사회 제도 대부분을 개혁하려 노력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법자강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던 탓에 기존 구식 관료들의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서태후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가 1898년에 무술 정변을 일으키게 되면서 변법자강 운동은 100여일 만에 끝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