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국왕 순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한 후 그의 아들, 순종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제의 눈치를 보는, 허울뿐인 황제였죠.
그러다 1926년 4월 순종이 사망하게 되면서 3•1 운동처럼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에 사회주의 운동가와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어요.
하지만,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던 일본이 개입하면서 당초 이들의 계획은 틀어졌어요.
준비한 격문(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글)은 압수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검거되었죠.
그런데도, 학생들은 동맹 휴학으로 참여하고, 상인들은 가게의 문을 닫고 투쟁하였어요.
6•10 만세 운동은 3•1 운동처럼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지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적 의미가 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소련의 영향을 받아 노동자, 농민 중심의 계급 해방을 주장했던 사회주의와 일본에 타협하지 않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대감을 느끼고 민족유일당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이후 민족유일당인 신간회가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