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운동

1️. 농민의 고통 심화

  • 농민의 조세 부담 증가 : 개화 비용, 외국에 대한 배상금 등 국가 재정 악화로 인한 조세 수취 증가
  • 매관매직의 성행과 지방관의 수탈 : 지주들이 일본으로 쌀 유출
  • 농촌 가내 수공업의 피해 : 일본 상인으로부터 영국산 면제품이 조선에 유통되면서 농촌 가내 수공업에 악영향

2. 교조 신원 운동에서 농민 운동으로의 발전

  • 동학 :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상과 외세에 대한 배격 주장
  • 동학의 확산 : 2대 교주 최시형이 교리 및 교단 조직을 정비하면서 교세가 커지고, 경상도를 비롯해 전라도, 충청도 등으로 확산
  • 동학에 대한 탄압 : 정부는 동학을 사교로 규정해 탄압, 교조 최제우 처형
  • 탄압에 대한 동학 교도의 대응 : 교조 신원 운동(최제우의 누명을 벗기고, 포교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전개한 운동) → 삼례 집회와 보은 집회로 이어짐(탐관오리의 처벌과 일본 및 서양 세력의 축출 등 주장)

3️. 고부 봉기의 발생

  • 배경 : 고부 군수 조병갑의 비리와 횡포(기존에 있던 보 아래 새롭게 만석보를 만들고 세금을 거둠)
  • 전개 : 전봉준의 주도 하에 봉기를 일으켜 고부 관아 점령 → 정부는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로운 군수 파견 → 농민 해산 → 그러나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농민 봉기 관련자들을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하면서 농민들의 불만 증대

4️. 동학 농민군의 봉기(제1차 봉기)

  • 전개 :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제폭구민’, ‘보국안민’을 내세우며 봉기고부 점령 → 백산에 집결하여 봉기의 취지를 알리는 농민군 4대 강령 발표 → 황토현, 황룡촌 전투 승리 → 전주성 점령 → 조선이 청에 파병 요청(톈진 조약을 토대로 일본도 군대 상륙) → 청일의 개입으로 나타날 혼란을 막기 위해 농민군과 정부는 교섭에 나서 폐정 개혁과 농민군 해산에 합의(전주 화약)
  • 전주 화약 이후 : 정부는 교정청 설치를 통해 개혁,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두어 지역 치안 유지 및 폐정 개혁 실시(노비 해방, 탐관오리 및 부패 양반 징벌, 잡세 폐지, 농가 부채 탕감)

5. 일본의 침략 의도

  • 전주 화약으로 청일 양군이 조선에 주둔할 명분은 사라졌으나, 일본은 조선 정부의 철병 요구 거부
  •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경복궁을 차지하고, 흥선 대원군을 중심으로 하는 새 정권을 수립해 개혁 추진
  • 이에 대한 청의 반발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청일 전쟁을 일으킴
  •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내정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
  •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재봉기 계획

6. 동학 농민군의 재봉기(제2차 봉기)

  • 삼례에서 재봉기 → 전봉군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연합 →  공주성을 점령하였으나, 일본군 우수 무기와 전략으로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 → 태인 전투를 끝으로 농민군 해산 → 전봉준, 김개남 등 동학 농민군 지도자 체포 → 동학 농민 운동 실패

7. 동학 농민 운동의 정신 계승

  • 의의 : 봉건적 억압과 착취에 반대한 반봉건 운동이자, 일본의 침략에 저항한 반외세 운동
  • 계승 : 폐정 개혁의 요구는 이후 갑오개혁에 반영, 농민군 잔여 세력은 항일 의병 투쟁의 토대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