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과 북벌론

1. 정묘호란의 발발

  • 인조반정 이후 명을 가까이 두고 후금을 멀리 두는 친명배금 정책 강조
  • 명과 조선의 단절을 노리며 후금 조선 침략(정묘호란, 1627) -> 후금군 황해도 진입 -> 인조 강화도로 피난, 정봉수와 이립 중심으로 의병들의 저항
  • 당시 조선은 후금을 막아낼 힘 부족, 후금도 명과의 전쟁으로 인해 조선과 싸움을 이어가기 어려웠음 -> 조선이 명과 관계를 끊는다는 조건으로 후금과 화친

2.병자호란의 발발

  • 이후 세력 확장한 후금이 국호 '청'으로 변경, 조선에 군신 관계 강요 -> 주화론 대신 척화론 득세, 조선 거부, 청 재침략(병자호란, 1636)
  • 주화론 : 청의 침입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
  • 척화론 : 청의 침입에 군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입장
  • 인조 남한산성에 입성, 청군에 저항 -> 청군 포위, 남한산성 고립 -> 강화도 함락, 척화론 대신 주화론 득세 -> 인조의 항복(삼전도의 굴욕), 소현 세자 및 봉림 대군 포로 압송, 청과 군신 관계

3. 북벌론의 등장

  • 청과의 교류에 대한 사회적 반감 고조 -> 청을 정벌해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북벌론 득세
  • 병자호란 당시 압송된 이후 다시 돌아온 효종(봉림 대군) 중심으로 북벌 적극적으로 추진 -> 서인 등용, 성곽 및 무기 정비, 군대 양성
  • 그러나, 청의 국력 확대 + 흉년과 재해로 인한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 지속 -> 북벌론 반대 주장 제기
  • 이후 효종의 급사 -> 북벌 실행 X, 청과의 교류 확대
  • 영향 : 청과의 사신 교류(연행사) -> 선진 문물 및 서학 전래 / 청과의 교류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북학론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