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 연합과 백제, 고구려의 멸망 그리고 부흥 운동

1️. 연합한 신라와 당

  • 고구려가 수·당의 대결 구도가 지속되는 동안 백제와 신라 간 대립 격화 -> 백제 의자왕이 대야성을 비롯한 신라의 40여개 성 침탈(642)
  • 이에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 지원 요청 -> 고구려는 신라의 죽령 이북 지역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협상 거절
  • 신라는 김춘추를 당에 파견,  지원 요청 -> 대동강 이북을 받는 조건으로 당이 신라의 제안 수용, 백제와 고구려 정벌을 위한 나당 연합 결성(648)

2. 백제 멸망과 부흥 운동

  • 당시 백제는 국가 운영을 두고 의자왕과 귀족 세력 간 갈등 -> 지배층 혼란
  • 이때를 틈타 당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사비성을 협공 -> 기벌포에 이어 황산벌에서 계백 결사대를 물리침 -> 사비성 함락 및 의자왕 항복으로 백제 멸망(660)
  • 백제 멸망 이후 각지에서 백제 부흥 운동 ex. 복심과 도침(주류성,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 흑치상지(임존성)  
  • 그러나, 지배층 내분, 왜가 합류한 백강(금강 하구) 전투에서 패배 -> 백제 부흥 운동 무력화

3️. 고구려 멸망과 부흥 운동

  • 당시 고구려는 이미 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연개소문 사후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으로 지배층 분열
  • 혼란을 틈타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평양성 함락, 고구려 멸망(668)
  • 고구려 멸망 이후 각지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 ex. 검모잠(한성, 안승을 왕으로 추대), 고연무(오골성)
  • 한때 평양성 회복, 당에 불만이 컸던 신라의 도움
  • 그러나, 지배층 분열로 점차 힘이 약해져 결국 실패 (이후 세력 일부는 신라에 흡수, 대다수는 요동 지역에서 항쟁 지속)